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내 생명 앗아가주오(앙헬레스 마스트레타, 문학동네)
우선 본작품에 대한 출판사의 광고카피를 보자.
"멕시코 혁명기를 배경으로, 꿈 많고 당찬 열다섯 소녀가 권모술수와 야심으로 가득 찬 정치꾼과 결혼해 겪는 굴곡 많은 삶의 여정을 그려냈다. 현대 멕시코 사회를 변혁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온갖 병폐와 부조리를 낳기도 했던 멕시코 혁명기와 그 이후의 격동기에 대해 기존의 남성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혁명의 폭력성과 타락상을 여성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경력 날조와 살인 청부도 마다않는 정치꾼 안드레스는 권위와 억압, 명령을 상징하는 남성상이다. 그런 남편의 권위에 짓눌리며 현실을 자각해가는 카탈리나는, 그러나 남편의 억압적인 언행에 맞서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는 등,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던 관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카탈리나의 삶을 통해 현대 멕시코 사회를 변혁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온갖 병폐와 부조리를 낳기도 했던 멕시코 혁명기와 그 이후의 격동기에 대해 남성적 시각에 입각한 서술과는 차별된 관점의 서술을 시도한다. 이 작품은 혁명이라는 명분 아래 20세기 전반 멕시코를 휩쓸었던 폭력성과 타락상을 여성의 관점으로 재조명한다."
아마 저 광고카피에 담긴 내용이 이 작품이 출간되어 평단의 평을 요약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성도 인정을 받았으니 남미의 문학상도 수상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겠지.
힘들게 힘들게 끝까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난 좀 다른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혼란하기 짝이 없었던 혁명기의 현대 멕시코다. 멋모르는 어린 열 다섯 나이에 권력에 대한 야심으로만 뭉쳐서 청부살인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 온갖 권모술수를 휘두르는 안드레스와 결혼한 주인공 카탈리나. 광고카피와 세간의 평과는 다르게 난 과연 주인공이 "관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녀를 둘러싼 그당시 멕시코의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안드레스에 얼마나 저항을 했는지, 그녀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이상적인 가치관의 실현을 위해서 사회참여적인 노력을 한 것이 있는지, 그들의 소설속 행동을 통해 "20세기 전반 멕시코를 휩쓸었던 폭력성과 타락상을 여성의 관점으로 재조명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주인공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안드레스와 멋도 모르고 결혼을 하게 되고, 그의 사생아들까지 맡아서 키우게 된다. 물론 악인 안드레스 답게 그런 사건 때문에 겪을 주인공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안드레스는 온갖 악행으로 - 그당시 멕시코의 어이없는 상황 - 부와 권력을 갖게 되고, 주인공은 주지사 사모님이 되기도 한다. 살던 집도 대저택이고 그런 대저택이나 별장이 멕시코 도처에 있다. 자신의 집에는 구두가 90켤레가 있다. 안드레스는 주인공에게 백화점을 인수해서 선물하기까지 한다. 주인공은 "답답한" 결혼생활에 짜증이 나면 다른 남자와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그런 사랑도 부유하기 때문에 거침이 없다. 언론에서나 풍문으로 안드레스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알아도 주인공의 항거는 소심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는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다 필요없지 않나 라는 고민은 살짝 한다.) 안드레스가 저질렀다는 악행을 들어도 섬뜩할 정도로 무심하다. 남의 얘기하듯이 지인들과 주고 받을 뿐. 부조리한 상황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저 남편이 죽는 것을 방관하다가 결국 사망하자 소심하기 짝이 없는 복수로 소설은 마무리.
일반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보이는 소설이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온갖 사건에 무신경한 주인공을 보면서 "남미 사람들은 이당시에 이정도 도덕관을 갖고 살았나"라고 오인할 정도였다. 일반 적인 비평으로 이 소설을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패미니즘적인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상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여성으로 대표되는 20세기초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억압받던 현실을 그려낸 것 뿐이다. 광고 카피처럼 "폭력성과 타락상을 여성의 관점으로 재조명"한 것이라면, 악독한 권력자의 아내, 그렇지만 온갖 부를 다 누리고 살았고 제대로 된 저항은 없었던 주인공을 등장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다. 더 없이 살던 계층을 주인공으로 삼았어야 광고 카피는 적절하다.
그런 관점에서 읽자니 책을 끝까지 읽기가 힘이 들었다. "주인공은 대체 소설속에서 무얼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무얼했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게 살아온 주인공의 삶이 주제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