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아니고 반려

능소화(2) 덩굴식물은 언제, 왜 나타났을까

by 김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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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은 약해서 기대는 게 아니라, 기대도 될 만큼 영리해서 기대는 방식입니다.”

능소화를 이해할 때 이 문장이 유효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덩굴식물을 자주 기생식물처럼 대하지만, 생태적으로 덩굴은 대개 양분을 빼앗지 않는 ‘구조(構造)의 이용자’에 가깝습니다. 덩굴은 나무를 먹지 않습니다. 대신 나무가 이미 지불해 둔 비용—굵은 줄기, 강한 목질, 자립을 위한 기계조직—을 사다리처럼 빌립니다. 이 “빌림”이 가능한 틈새(니치)가 있었고, 그 틈새가 반복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덩굴은 진화사에서 여러 번 출현했습니다.


Q. 덩굴식물은 언제 출현했습니까?

A :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생겨났습니다

덩굴(목본 덩굴, 리아나(liana))은 특정 계통이 한 번 발명한 형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식물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진화한 생활형으로 다뤄집니다. 화석기록을 종합한 개관 연구들은 고생대부터 현재까지 “오르기(climbing)”라는 생활형이 꾸준히 등장해 왔음을 정리합니다.

특히 속씨식물(피자식물)에서 ‘목본 덩굴’은 늦어도 백악기(白堊紀)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악기(약 7천만 년 전 전후) 지층에서 속씨식물 덩굴의 줄기 화석(목재 해부학적 형질로 덩굴 습성을 추정)이 보고되었고, 이는 “현대형 열대우림의 구조적 복잡성(덩굴이 만드는 층위)이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덩굴은 “신기한 예외”가 아니라, 식물들이 숲이라는 입체 공간을 두고 경쟁할 때 반복적으로 선택한 해법입니다.


Q. 어떤 생태적 니치가 덩굴을 만들었습니까?

A : 숲의 ‘빈틈’, 가장자리, 그리고 건기의 세계입니다

덩굴식물의 니치는 자주 교란(disturbance)과 함께 설명됩니다. 나무가 쓰러져 생긴 틈(갭(gap)), 산사태, 바람길, 가장자리(edge) 같은 공간은 빛이 갑자기 들어오는 대신 지면은 불안정하고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덩굴은 여기서 강합니다.

덩굴은 지지체를 이용하므로 자립 줄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확보한 자원을 잎·뿌리·생식에 더 배분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덩굴이 빠르게 “빛이 생긴 자리”를 점유하는 데 유리하다는 기능생태학적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열대·아열대 숲에서 덩굴이 교란과 함께 늘어난다는 장기 관찰과 종합 검토가 축적돼 있습니다. 특히 가뭄(drought)과 산림 교란 증가(산림 전환·파편화 포함)가 덩굴의 상대적 우위를 강화한다는 논의가 반복됩니다.

최근의 세계 규모 분석도, 덩굴의 지배력(나무 대비 우세)이 산림 교란, 기후(특히 수분 가용성), 계절성에 의해 강하게 설명된다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즉 덩굴의 세계는 “고요한 원시림”만의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빛이 흔들리고 물이 모자라며 경계가 많아지는 숲의 세계입니다. 능소화가 담장과 벽에서 유난히 번성하는 것은 도시가 그 조건을 대량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늘 가장자리이고, 늘 작은 교란의 연속이며, 수직면은 과잉 공급됩니다.


Q. 덩굴의 이점은 무엇입니까?

A : ‘줄기 비용 절약’ + ‘수송 효율’ + ‘계절의 우위’입니다

덩굴의 장점을 한 문장으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덩굴은 줄기에 덜 쓰고, 잎과 뿌리와 꽃에 더 씁니다.”

연구들은 덩굴이 나무에 비해 생체량 배분(biomass allocation)에서 줄기(자립을 위한 목질 투자)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광합성 기관(잎 면적)과 자원획득 기관(뿌리)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물의 길입니다. 덩굴(리아나)의 줄기는 종종 큰 도관(vessel)을 통해 높은 수송 효율을 보이는 경향이 논의되어 왔습니다. “수리적 설계(hydraulic design)”가 덩굴 생활형의 성립과 연결된다는 검토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효율은 계절적으로 건조해지는 환경에서, 혹은 교란 뒤의 뜨겁고 밝은 환경에서 상대적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그림자도 있습니다. 수송 효율이 높다는 것은 때로 취약성, 예를 들어 추위에 의해 관이 막힌 상태(색전, embolism)와 맞물리기도 합니다.


Q. 그렇게 좋다면 왜 모든 식물이 덩굴이 되지 않았습니까?

A : ‘지지체 의존’과 ‘기후·물리의 한계’ 때문입니다

덩굴은 만능이 아닙니다. 덩굴은 숲에서 이득을 얻지만, 그 이득은 조건부입니다.


(1) 지지체가 있어야 합니다: 덩굴은 ‘숲’이 필요합니다

덩굴은 지지체가 없는 개활지에서 크게 불리해집니다. 초원, 사막, 한랭지처럼 지지체가 드문 곳에서는 덩굴의 전략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덩굴은 “자립하지 않기로 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자립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 한랭(동결) 환경에서의 불리함: ‘동결 색전’(추위에 의해 관이 막힌 상태) 위험입니다

덩굴이 열대·아열대에 특히 풍부하고 온대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 중 하나로, 추운 겨울의 동결 손상이 거론됩니다. 덩굴의 긴 도관 체계가 동결 유발 색전에 취약할 수 있고, 회복이 어렵다는 설명이 제시돼 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추위에 약합니다”라는 말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물관 구조와 겨울 기후 사이의 상호작용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덩굴은 빛을 빨리 얻는 전략을 택했지만, 그 대신 기후적 제약을 감수해야 합니다. 생태 전략은 언제나 교환입니다.


(3) 해부학적·진화적 제약: “덩굴이 되려면” 필요한 내부 조건이 있습니다

덩굴 생활형은 단순히 “기어오르고 싶다”는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줄기의 해부학(특히 물관)과 기계적 유연성, 장거리 수송 능력 같은 조건들과 엮여 있습니다. 도관이 없는 관다발 식물(예: 도관이 없는 계통)에서 ‘덩굴화’가 드문 이유를 “큰 도관이 덩굴 진화에 필요할 수 있다”는 가설로 제시한 연구도 있습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식물의 물관(xylem)에는 두 종류의 물 수송 세포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관(vessel element)입니다. 여러 개가 위아래로 연결되어 굵은 관을 형성해 물을 빠르게 많이 운반합니다. 속씨식물(피자식물)에서 주로 발달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도관(tracheid)입니다. 길고 가는 세포 하나하나가 물을 전달합니다. 수송 효율은 낮지만 더 안전하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겉씨식물(소나무류 등)과 초기 식물군에 흔합니다. 즉, “도관이 없는 관다발식물”은 물관은 있지만, 도관 대신 가도관만 가진 식물입니다.

소나무(Pinus), 전나무(Abies), 잣나무, 향나무, 주목(Taxus) 같은 겉씨식물은 모두 관다발식물이지만 물 수송은 가도관만으로 이뤄집니다. 수송 효율은 속씨식물보다 낮지만 동결 색전에 더 강합니다. 침엽수림이 한랭 지역에서 우세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침엽수(겉씨식물)에는 목본 덩굴이 거의 없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해부학적 제약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Q. 덩굴식물을 기생한다고 일부러 떼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무에 정말 해롭지 않습니까?

A : “기생”이 아니라 “반려”에 가깝습니다. 덩굴은 양분을 훔치지 않고, 구조를 공유합니다

덩굴은 오랫동안 “구조적 기생(structural parasitism)”으로 불리며, 나무의 성장과 생존을 낮추는 존재로 연구돼 왔습니다. 실제로 덩굴이 나무의 광획득을 방해하고, 물·양분 경쟁을 강화하며, 나무의 성장률과 생존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증거는 탄탄합니다. 그래서 “나무 입장”만 보면 덩굴은 불청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프레임만으로는 숲의 실제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반론도 강해졌습니다. “구조적 기생”이라는 단어가 덩굴의 역할을 과도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덩굴이 숲의 낙엽(리터(litter)) 생산, 양분 순환, 서식 구조 제공에 큰 기여를 하며, 어떤 맥락에서는 숲의 기능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재평가도 제시됩니다.

그래서 “반려식물”이라는 감각이 나옵니다. 생태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덩굴은 대부분 양분을 흡혈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체관(phloem)이나 물관(xylem)에 직접 연결해 자원을 빼앗는 기생식물과 구조가 다릅니다. 덩굴은 공간과 구조를 공유합니다. 어떤 나무는 덩굴 때문에 손해를 보지만, 숲이라는 시스템은 덩굴이 제공하는 구조적 복잡성과 자원 흐름 덕분에 다른 방식의 풍요를 얻기도 합니다.

인간의 감각으로 “반려”라고 부를 때 중요한 것은, 덩굴이 “흡수”가 아니라 “기대기”를 통해 공존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다만 그 공존은 언제나 비대칭적일 수 있고, 그래서 갈등도 내장합니다. 그 갈등까지 포함해 생태입니다.

능소화의 경우, 담장과 벽이라는 비생물 지지체를 주로 쓰는 순간에는 이 논쟁이 더 흥미로워집니다. 지지체가 나무가 아니라 벽일 때, 덩굴은 ‘기생’이라는 오해에서 더 멀어집니다. 능소화는 나무를 손상시키지 않아도 상승할 수 있습니다. 도시는 덩굴에게 숲이 주지 않는 방식으로 비생물의 사다리를 줍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꽃이 다시 사람의 감정과 서사를 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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