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고요한 인생>중 ‘아들’을 읽고, 느낀 점
책 <고요한 인생>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도 표지였고, 둘째도 표지였다. 정갈한 글씨체에 푸른 숲속을 걸어가는 빨간 원피스의 여성과 까만 고양이가 평화로워 보였다.
책을 펼치고, 단숨에 한 권을 비워내기란 쉽지 않았다. 한 번씩 글을 읽을 때 손이 아려왔다. 책 표지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책의 내용은 잔잔하게 우울했다. 다만 중간중간 불쾌함이 밀려오는 작품도 있었다.
책은 총 7가지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글에서 주체로 다뤄지는 대상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가족을 흔한 ‘화목’의 명대사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가족에게서 버림을, 소외를,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다. 한 집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폭력적이다. 이 느낌은 두 번째 이야기인 ‘아들’을 읽으며 더 심화하였다.
‘아들’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다룬 얘기다. 글 ‘아들’에게서의 화자는 어린 아들(이하 소년)이다. 그리고 글은 소년이 다 큰 청년으로 장성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서술했다. 주로 소년의 죄책감에 초점을 맞추며 말이다.
소년의 가족은 공중그네 묘기를 했다. 소년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발을 잡아 완성하는 식이었다. 즉, 한 과정이라도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땅으로 떨어졌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소년과 아버지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한 판잣집을 구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집을 떠나고 말았다. 아코디언을 두고 말이다.
아들은 찐빵을 한 봉지 산다. 이십년 전 전해주지 못한 찐빵이 오늘은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염원해 본다. (중략) 머리칼이 허연 노인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깊은 침잠의 세계에 빠져있는 눈동자는 아들을 넘어 저 먼 곳을 향해 있다. 어쩌면 곧 도래할 운명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의 가슴이 쩡 소리 내며 갈라진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다가올 이별의 예감에 슬픔이 앞서간다. (중략) “아직도 이걸 가지고 있었느냐? 이제 네게 아코디언 켜는 법을 가르쳐주마.”
글을 소년의 시선으로 전개되었지만, 왜인지 내 마음은 줄곧 아버지가 신경 쓰였다. 아버지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자기 아들 손에 미끄러진 탓에 사랑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게 되었다. 어린 아들이 내내 신경 쓰이고, 애틋하겠지만, 마냥 사랑스럽진 않았을 듯하다. 그 심경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아들을 보면 아내가 생각나고, 그때의 사건이 계속 생각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판잣집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그 집을 떠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 곁을 떠났다. 최소한의 아버지 노릇을 한 셈이다.
제삼자의 입장으로 읽었을 때는 아버지가 무책임하다는 생각과 아들이 계속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면 판잣집을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답답한 신경이 혼재되었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었다면? 1년 365일 아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아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들은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을 짓고 있을 텐데, 아버지라고 그 아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않고,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는 어린 아들의 행동에 마음이 미어지진 않았을까.
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떠났으며, 또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다 너를 위해 그랬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몹시 겁이 난다. 알겠니?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아버지는 결국 돌아온 판잣집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소년에게 해준 것은 소년의 몸에 맞는 양복 한 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법이었다. 떠난 아버지라고 자기 아들이 걱정되지 않았겠는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과 아들의 죄책감을 끊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상충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떠난 20여 년을, 그 곱절로 보냈을 것이다.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내가 속한 우리 가족이 정말 평범한 가족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면 단순히 태어날 때 운이 좋아서 만날 수 있었던 가족이 아니었을까. 만약 소년이 소위 말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때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더라면, 소년은 지금쯤 어떻게 성장했을까. 어른 같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어린 소년을 한 번 그려본다.
분류
문학〉 한국소설
지은이
신중선
펴낸 곳
내일의문학
쪽수
204쪽
가격
15,000원
규격
134*200
ISBN
978-89-98204-76-1 (03810)
출간일
2020. 07. 27.
[전문 보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