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게 만드는 미친놈의 존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처음으로 장인어른의 생신에 처갓집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지방에 멀리 있는 처갓집에 가기 전 나는 아내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는데, 퇴근 시간이 좀 달랐던 우리는 각자 따로 출발해서 처갓집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아내는 기차로, 나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손위 형님의 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다.
말다툼의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가는 내내, 출발 전 말다툼이 처갓집 행사에 영향을 줄까 싶어 나는 차 안에서 무척 조마조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갓집에 먼저 도착해있던 아내가 나에게 했던, 짧은 한마디.
“왔어?”에 나는 잠시 안도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많은 만큼이나 나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정신이 없었다.
처갓집에는 2층에 작은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은 처가의 오랜 ‘전통’상 갓 결혼했던 신혼부부에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방이었다.
몇 해 전에는 넷째 형님 부부가, 그 전에는 셋째 형님 부부가, 명절에 묶으셨던 방이었고, 이번에는 우리 부부에게 그 방의 이용 순번이 넘어오게 되었다.
새벽 무렵, 이상한 기분이 들어 옆을 보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내가 내 옆통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장마 빗줄기 같은 말이 시작되었다.
,,,,,,,
그녀의 말이 귀에서 눈에서 쏴아 쏴아- 울렸다.
겹겹이 쌓은 오해들로 얼룩진 아내의 말은 이미 통제 불가 방언이었다.
나도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여긴 처갓집의 2층, 심지어 지금은 새벽이었다.
그저 마음속에 한 문장만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작정을 한 것이었다. 아님 누군가의 지령을 받았던 것일까.
2층에 가두어 줄 테니, 소리가 나도 듣지 않을 것이니,
마음껏 퍼부어라 했을까.
한참의 인내 끝에, 우리는 평화로운 처가 행사를 위한 심리적 휴지기를 갖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도 나는 외롭고 갑갑했던 2층의 그 방을 싫어한다.
나는 그때 알았다.
결혼 생활은 결코 쉬운 게 아니구나.
누군가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는 연애할 때 헤어질 구실을 찾는 말일뿐이라고.
첫 아이를 낳고, 서로서로 예민한 시기에
내가 찾았던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결혼은 현실이고, 결혼 생활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결혼한 분은 내가 연애하던 시절의 그분과는 같지만 다른 분이었다.
결혼은 현실이고, 연애는 환상의 실천이었으니까.
나는 그때 알았다.
상대방의 끊임없는 말도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
화를 낼 때의 아내의 버얼건 눈은 어느덧 나의 눈을 닮아 있다.
여름 풀벌레처럼 어느 작가의 문장이 다시 스쳐 날아든다.
“미친년 널뛴다는 말은 폭력적이다. 미친년을 미치게 만드는 미친놈들의 존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신형철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