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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Mar 04. 2021

형수님은 투쟁중

<달이 몰락한 그곳에서 둥근달을 바라본 자>들의 명절

이번 명절에도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명절 음식 준비를 위해 친가에 형수님과 아내가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명전 전날 오전 10시이다. 

바삐 운전하면서 시간을 봤을 때,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전날 직장의 일로 고단했던 아내는 조수석에서 기절한 채 자고 있었다. 

이미 지각은 자명한 일이었고, 다만 이번에는 시절이 많이 흉흉하고 특수하니 이해해주시지 않을까라는 기대만 잠깐 했다. 

‘어려운 시기에 내려온 게 어디야. 잘 왔어’를 기대했으나, 대신 ‘지금 몇 시야’라는 표정의 퉁명스러운 반응만 있었던 게 더 당혹스러웠다. 


이번에는 친가에 들렀다가 항상 가던 처가에는 가지도 못하는데, 음식 준비를 어머니와 하셔야 하는 형수님이 마음에 걸려 친가에만 잠깐 갔다 오자고 했던 건 아내였다. 

처가에는 가지도 못하는데, 친가에 가면 차례음식 준비로 일을 해야 하는 아내에게 일찍 출발하자라는 말을 정말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서울에서 나름 일찍 출발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고속도로는 정체구간이 많았다. ‘고향도 못 가게 하는데 대체 다들 어딜 가는 거야.’라고 불평 섞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휴양지와 펜션이 모두 만석이라는 라디오 뉴스에 실소가 나왔다. 


결국 우리 가족이 고향집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이었다.


형수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이런 시국에 이 시간에 온 게 어디냐는 것은 그냥 내 생각뿐이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니까.

이번에는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은 그냥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진 지 오래 같았다.


“형수님 죄송합니다.”

빠른 사과로 위기를 면했지만, 영 개운치가 않았다.

이게 이렇게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운전하면서 미리 늦는다고 전화를 해둘껄.하는 아쉬움이 잠깐 몰아쳤다. 그 말을 하는게 염치가 없어 생략했지만, 더 염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인지 명절의 본질이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노동을 서로 요구하고 분담하는 일로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도 나름의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셨듯이, 어머니는 며느리들에게 그리 많은 것들을 하게 두시는 성격이 아니시다. 대부분의 일들을 어머니가 미리 해두시고, 겨우 한 시간 일을 먼저 하신 형수님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겠는가. 

‘첫째, 둘째가 어디 있느냐, 요즘은 모두 똑같이 해야 한다’고 어머니 앞에서 자주 말씀하시는 형수님도 이해는 간다. 


그리고 형수님은 적어도 그 말을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신 듯하다. 언젠가 저울이 기울었다 생각하실 때는 영락없이 아내에게 쏘아붙이신다. 결국 그 화는 귀경길 차 안에서 운전하는 나에게 풀어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것은 장자 위주로 갖는 가부장적 질서와 기대역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발언일지도 모른다. 

형수님의 말과 행동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이 희생의 역사가 본인에게 되풀이될 수 있음을, 그래서 그런 상황을 초장부터 바로 잡아보겠다는 일종의 투쟁일 것이다.


어머니는 그걸 왜 모르시겠는가.

그래서 언젠가부터 어머니도 서로의 평화를 위해 손수 미리 준비하시는 과정들이 많아졌으리라 짐작한다.


이런저런 사이트에 떠도는 또 다른 형수님이 나를 더 심란하게 했다. 


왜 자기집안 생일, 제사를 남의 집안 여자가 챙겨야 할까여? 맘에 들지 않지만 체제를 거부하지도 못하고 살아여.
지갑 빵빵한 동서는 미리 귓뜸해주면 코가 삐뚤어지나요. 혼자 점수따서 뭣이 좋다구... 같은 편일줄 알았는데 상대편보다 못한 것이 동서 사이인듯해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서들도 있던데 
 수지의 박모여사님 화는 언제나 풀리려나?
아들사랑에 눈멀어 툭하면 삐지시는 어머님이 가엾기도 하지만..이럴 땐 난감에 열폭-_- 남편에게 화풀이했죠. 울엄마아빠는 당신한테 바라는 거 없고 싫은 소리 평생 한번 안하고 못하는데, 난 왜 맨날 이러고 살아야는지ㅠㅠ

출처: https://beforesunset.tistory.com/257 [기억하는 은유]


『 악인은 없지만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구조의 문제에 눈 돌리게 된다.
   ... 엄마의 노동이 자식이 성인이 되도록 모를 만큼 공적으로 논의되지 못했음을 상기시켰다』
   - 은유, 다가오는 말들 중에서.


형수님은 이전 세대의 노동을 공적으로, 사적으로 인정하며, 이제는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자라는 것을 가장 선두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저 당장의 사과로 내가 급한 화는 막았으나, 언젠가 가족 간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명절이 벌써부터 피곤하고 갑갑하다.

역정을 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 어머니의 야윈 손, 화난 형수님의 눈, 아내의 잔소리 그리고 형과 나.

구조의 문제로 대상들을 치환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호통에 익숙한 아버지, 야윈 손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 동서를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형수님,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아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과 나.

모두 시대적 아픔이자 일종의 피해자이다. 

이들의 동행은 그리 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다. 무언가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별로 행복하지 않은 연휴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이렇게 보낼 예정이다. 

<달이 몰락한 그곳에서 둥근달을 바라본 자>들의 명절은 언제까지 그 달처럼 풍요로울 수 있을까.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시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젠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 될 수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
    아니 그 전락을 홀로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충분히 외롭다
    하지만 난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했다 난 집 밖으로 나간다
    난 집이라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 노릇이, 버겁다 
    난 그런 나의 쓸모없음을 사랑한다 
    그 쓸모없음에 대한 사랑이 나를 시 쓰게 한다
    그러므로 난,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호의보다는 
    날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냉랭한 매혹에게 운명을 걸었다
    나를 악착같이 포용해내려는 집 밖에는 보름달이 떠 있다
    온 우주의 문밖에서 난 유일하게 달과 마주한다 
    유목민인 달의 얼굴에 난 내 운명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만
    달은 그저 냉랭한 매혹만을 보여줄 뿐이다 
    난 일탈의 고독으로, 달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쓴다 
    그렇게 내 인생의 대부분은 달을 노래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달이 몰락한다 난 이미, 달이 몰락한 그곳에서
    둥근 달을 바라본 자이다 
    달이 몰락한다, 그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내 노래도 달과 더불어 몰락해갈 것이다』

   - 유하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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