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 Hana Oct 26. 2021

외할머니의 기도빨

성질 더러운 손녀딸의 고백.

지난주 무심히 카톡을 열었는데, 한국에 있는 이모한테서 연락이 왔다. 외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입원하신다고, 네 전화를 받으면 좋아하시니 전화 꼭 하라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읽고서, 잠깐 동안은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던 것 같다. 카톡을 다시 열어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아이고,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외할머니는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다. 


외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셨다. 형제자매가 여섯인가, 일곱인가 하여튼 그중에 맏딸인데, 그 옛날에 구두를 신고 학교에 다니셨다고 들었다. 곱게 자란 맏딸이었지만, 남편 복이 별로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술만 안 마시면 참 착한' 남자였다. 술만 안 마시면, 자식들도 끔찍이 챙기고, 술만 안 마시면 마누라한테도 잘했다. 술만 마시면, 마누라를 두들겨 팼고, 술만 마시면, 자식들이 아무리 말려도 상관 안 했다. 큰 딸인 엄마가 증언하길, 그냥 두들겨 맞으면서 외할머니가 도망갈 시간을 벌었다고 했다. 술버릇이 더러운 데다, 의처증까지 있는 남편에게서 어느 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외할머니는 맨발로 서울로 도망쳤다. 그게 아마 할머니가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때, 30대 후반, 아이 셋을 기르던 한 여자가 겪은 일이다. 


어릴 때는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자주 갔다. 벽돌로 지은 교회 분위기와, 수십 명의 배를 채우려 큰 솥에 끓인 시래기 된장국 맛이 좋았다. 할머니는 성격이 밝고 붙임성이 있어서 친한 사람도 많고, 인사하는 사람도 많았다. 외할머니는 항상 나를 보고 ‘기도해서 낳은 아이'라고 했다. ‘너는 기도해서 낳은 아이야, 하나님이 주셨어. 내가 너네 엄마한테 낳기면 하면 내가 키운다고 그랬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길러주신다.’ 대충 이런 레퍼토리였는데, 철이 좀 들어서야 사실 엄마가 낙태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는 걸 알았다. 첫 임신부터 지우면 안 된다고, 낳고 보라는 게 할머니 마음이었다. 


손녀, 손자는 느즈막에 생긴 덤 같다고, 공짜로 생긴 선물 같다고 그러셨다. 본인 자식을 기르는 건, 삶이 너무 팍팍해서 부담스럽고 힘들었는데, 손녀, 손자는 그 보다 마음이 가벼웠던 모양이다. 당사자가 아니니 나야 모르지만, 은근 자식들이 마음에 안 차기도 하셨던 모양이다. 큰 사위와 잠깐 살아보고, 작은 사위와도 오래 살아봤지만, 결국 할머니는 혼자 사시게 됐다. 교회 다니고, 믿는 다고 하는 사람이 성질머리 고약하다고 가족 중 누군가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그렇게 착한 체를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식들과는 불화한다고, 위선자라고 했다. 


코칭이라는 직업에 맞게 몸과 마음이 자라난 후에야, 한 사람의 믿음은 그게 내 할머니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믿음을 가진다고 한 사람이 성인이 되거나, 내가 바라는 데로, 내 입맛에 맞는 이타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는 것, 주변에 누군가가 착한 사람이 되면, 나에게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환상이었다. 한 사람의 영적 생활은 사실 타인이 왈가왈부할 일이 전혀 아니다. 어떤 종교의 틀에 맞지는 않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믿음을 가지게 된 과정은 인간으로서 내가 가진 취약함과,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더러운 성질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 내가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과정을 밟아야 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손녀딸이 자기 기도의 힘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할머니가 나는 좋다. 그녀의 기도빨을 나는 믿는다. 기도해서 낳은 아이라 그런지, 복 받은 일이 참 많았다. ‘커서 세상을 밟고 다니라’고 기도하셨다는데, 기도빨이 워낙 센 덕인지, 외국에 나가 돌아오지를 않는 손녀딸. '너 보고 싶어서 내가 병이 났다'라고, 약간 어눌한 발음으로 말씀하시는데, 이상하게도 눈물과 웃음이 같이 났다. 뇌경색이라는데 하고 싶은 말 다 하시는 걸 보니, 돌아가시지는 않겠구나 싶어 웃음이 나고, 이렇게 세월이 길 줄 몰랐는데,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떠나온 게 죄송스러워 눈물이 났다.

어쨌든, 외할머니 보러 한국에 곧 간다.

가서, 성질 더러운 손녀딸 너무 미워하지 마시라고 싹싹 빌어야겠다. 




Photo : Pinterest, https://www.pinterest.jp/pin/861383866231578410/


작가의 이전글 수치심 없는 성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