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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좀 없어도 괜찮다

미니멀한 옷장

남편과 함께 외출하는 어느 날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착장이 모두 남편 옷이다. 구입했다가 사이즈미스로 작아서 물려받은 남편의 운동복 바지, 세탁 후 사이즈가 줄어들어 안 입는 남편의 면티셔츠, 편의 큼직한 집업 잠바와 양말, 캡모자까지  남편 것이다. 이런 .. 익숙한 듯 갑자기 낯설다.




난 옷이 없다.

나도 이쁘게 입고 싶고 멋있게 꾸미고 싶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옷이란 편하고 깔끔한 게 제일이었다. 지금까지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쇼핑은 귀찮기 그지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옷을 사러 나가는 일은 늘 후순위로 밀려나고, 인터넷 쇼핑도 검색부터 결제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늘 “나중에 사야지” 하며 미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결국 내 옷들은 아주 가벼워졌다. 옷이 없어도 그럼에도 수업 가는 날이면 아침 일찍 화장을 하고(5분 완성) 심플하지만 단정하게 옷을 입으려고 애쓴다. 평소엔 답답해서 하지 않는 액세서리도 꼭 착용한다. 옷 가짓수와 옷을 단정하게 입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니옷, 내옷, 공용옷

처음엔 옷이 없어서 남편 옷을 몇 번 빌려 입었다. 생각보다 편했다. 티셔츠는 적당히 헐렁해서 활동하기 좋고, 바지는 통이 커서 아주 편안했다. 무엇보다 급하게 옷 살 필요 없이 집에 있는 옷을 활용하고 버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점점 남편 옷공용 옷이 되었다. 남편은 나의 펑퍼짐한 넉넉한 옷차림을 보고 “입을 옷 없으면 옷 좀 사!!”라고 말한다. 궁상과 미니멀의 어중간한 콜라보가 어이없나 보다. "여보가 옷을 사놓고 안 입으니까 나라도 입 버려야지!!"라고 말하며 또 하루를 버틴다.


사람은 변한다

쇼핑을 안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체형이 많이 변했고, 이제는 ‘뭘 입어도 예쁨과는 거리가 멀다’는걸 깨달았다. 옷을 입는 기준이 '스타일'에서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는 아이와 가족을 우선시하며 찾아온 변화일지도 모른다. 남편 옷을 이렇게 자주 입게 될 줄은 젊은 날엔 상상도 못 했다. 가끔은 이런 나를 돌아보며 웃음이 나온다. 옷값도 아끼고 쇼핑의 수고로움도 아꼈다. 뭘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아끼고 옷을 세탁하고 관리하는 번거로움도 아꼈다.ㅋ





쇼핑 귀찮음 덕분에, 예상치 못한 미니멀한 공용 패션(?) 라이프를 살고 있다. 앞으로 내 쇼핑 귀차니즘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해진다. 여보, 궁상처럼 보여도 미니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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