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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데, 시작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시작이 반이다

새로운 수업을 제안받았다. 기존에 했던 수업이 아니라서 걱정이 많았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할지에 대한 생각과 준비가 부족했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이 수업을 한다고 해야 할지, 못 한다고 해야 할지, 백만 번 고민했다.



시작하기 전

나는 소심하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다. 괜히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여러 가지 걱정근심을 만들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지금 딱 여유 있고 좋은데, 새로운 일을 일정에 넣는 순간 바빠질게 뻔하다.


처음 해보는 수업이라, 기존 쌤들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 비교당할 것 같다. 괜히 시작했다가 실패하느니, 거절하는 게 맘 편하고 쉬울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해보고 싶다. 프리랜서 강사는 돈벌기회가 잘 없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없다. 성장하고 싶다. 내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다. 해내고 싶다. 그런데 불안하다.



시작해 버렸다

하고 싶은 마음, 하기 싫은 마음 50대 50. 그런데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겨서, 반드시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차라리 잘 됐다. 내가 스스로 맘먹길 기다린다면 아주 오래 걸린다.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맘먹을 필요도 없으니까. 핑계 그만! 닥치고, 일단 시작해! 그렇게 업 일정을 잡았다.


이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쩔 수 없다. 이미 해야 하는 '내 일'이 되었다.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다른 쌤들이 하는 만큼 잘해야 한다. 수업을 어떻게 준비할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 기왕이면 잘 준비해서, 재밌는 수업을 하고 싶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밤에 잠이 안 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한편으론 시간이 잘 간다.


준비시간이 촉박했지만, 부지런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첫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긴장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수업을 하면서 나도 너무 재밌었다.


1회 수업이 끝났다. 이제 5회 차 수업이 남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짜 맞는 말이다. 그렇게 쓸데없이 많은 고민을 했지만, 막상 시작하면 술술 잘 풀린다. 괜히 았다. 역시,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해내는구나. 이런 내 자신이 기특하고, 좀 멋있다.



끝이 보인다

나는 나의 준비를 믿는다. 충분히 일정을 고려해서 미리미리 포괄적인 준비를 해 두었다. 이제는 수업을 할 때마다, 다음 차시 수업 딱 하나만 깊이있게 고민하면 된다. 그리고 수업 직전까지 완성한다.


어떻게 시작하나 싶었는데, 드디어 마지막 수업날이 되었다. 시작을 하면 언젠가 끝이 난다. 걱정했던 것들은, 사실 다 별거 아니었다. 마지막 수업까지 다 끝나면, 진짜 속이 시원할 것 같다. 마무리까지 잘해야지. 끝나면 서류정리도 냉큼 해야지. 잘했다고 소문나면,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생기겠지.



끝났다

아, 다음 주엔 수업이 없다! 드디어 다시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야지. 그동안 못했던 집안일도 해치워야지. 도서관 가서 글 좀 신나게 쓸 수 있겠다.


그런데 막상, 여유로운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다시 마음이 불안해진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떤 일에 도전할 수 있을까? 뭘 하면 잘할까?



다시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20대 때 하던 고민을, 40대가 넘어서도 하고 있다. 나의 쓸모는 뭘까?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대 땐 돈이 벌고 싶어서 당장의 '취업에 필요한 쓸모'만 고민했다면, 40대가 넘어서는 '평생 할 무언가' 위한 쓸모를 찾게 된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완벽한 타이밍을 찾다가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았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에 기회는 사라진다. 준비 안된 상태로 기회를 잡기엔 불안하고 걱정이 많고 심란하다. 하기 싫은데 하고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데 하기 싫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이번 일은 잘 끝냈으니, 다음에 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조금 생겼다. 자기 효능감이 쌓인다. 경력이 쌓인다. 여전히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은 몰아치겠지만, 닥치면 결국 해내고야 마는 나를 믿어본다.





남편이 수영을 시작하고, 나에게 수영을 권했다. 운동이라곤 한 달 두 달 해본 헬스랑 요가가 전부인 나에겐 엄청난 새로운 도전이었다. 수영복도 부끄럽고 물도 조금 무서웠다. 남편과 싸우기 싫어서 억지로 끌려간 건 맞지만, 사실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 이참에 운동 시작해보자!!


수영을 등록했다. 힘든데 재밌다. 수영에 푹 빠져서 일주일에 6일을 수영했다. 그리고 곧 2년 차가 된다. 남편은 요즘 수영에 흥미를 잃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수영을 연구(?) 중이다. '시작이 반이다'는 말은, 경험하면 할수록 진리인 것 같다.


학창 시절, 손들고 발표할 용기는 없는데, 모두 빠짐없이 발표를 해야 한다면 잘할 자신이 있었다. 자발적으로 나설 자신은 없는데, 누가 멍석 깔아주고 시키면 잘 해냈다. 나처럼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은, 자꾸 억지로 떠밀려서라도 해보는 경험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 손을 번쩍 드는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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