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혁 Dec 24. 2023

나, 메리 크리스마스 - 최엘비 <독립음악>

최엘비 <독립음악>을 듣고

 

출처:유튜브 / 커버 사진 출처:벅스

 유쾌하지 않은 꿈을 꾸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만남을 가졌다. 다들 애인과 함께 자리했고, 나는 그 속에서 혼자 앉아있었다. 잠깐의 반가움이 지나 밀려온 것은 부끄러움, 열등감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나왔고 집에 혼자 돌아갔다. 집에 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따스한 분위기를 척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거리로 나아가며 따뜻한 공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꿈에서 깼고 일어나 시간을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홀로 있는 자취방은 쌀쌀했다. 이불 속에서 잠깐 뒹굴다가 일어나서 커피를 마셨다. 크리스마스 이브이지만 약속은 없다. 원치 않은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하루였다.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만지고 책을 보며 오전을 보냈다. 그리고 라면을 끓였다. 수 없이 반복됐던 특별하지 않은 하루였다.


 SNS를 보니 꽤 많은 지인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즐기고 있었다. 애인과 여행을 가기도 했고, 연말 파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스비가 아까워 보일러를 틀지 않아 쌀쌀한 자취방과 달리, SNS 속 사람들은 따뜻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오늘 꿨던 꿈도 어쩌면 나의 마음속에 있는 질투와 시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행복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심술이 난 모양이다. 생각보다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인가보다.


 간단한 집 정리를 마치고, 노래를 들었다. '시간도 많은데, 앨범 하나를 들어야지.' 생각했고. 최엘비의 <독립음악>을 틀었다. 몇 번 들어봤지만, 이번에는 가사를 씹으며 들었다. <독립음악>은 앨범 구성과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었다.


 예전에도 재밌게 들었으나, 가사에 집중해서 들으니 더욱 좋았다. 아티스트의 감정이 솔직히 담겨있었고 그 감정은 열등감, 질투와 같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꼭 눌러 담은 곡이 어찌나 가슴을 울리던지. 앨범을 듣다가, 눈물도 조금 났다. 대부분의 노래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슈프림>이 제일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노래 <도망가!>는 '브로콜리너마저'가 피처링을 했는데, 해당 부분은 앨범 첫 곡과 조응되어 감격했다. 트랙마다 유기성도 재밌었고, 무엇보다 아티스트의 진솔한 이야기와 감정이 너무 좋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모두가 그렇듯이, 그것은 너무나 힘들고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많은 약점을 알아, 스스로를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쩌면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역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종종 당연한 것이 가장 어렵기도 하다.


 최엘비의 앨범을 들으며,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했다. 그 덕분에, 조금은 외롭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무시하지 않고, 가장 먼저 나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 달리기 좋아하네…?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