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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Dec 18. 2023

아름다운 나날

by 플뢰르 이애기

저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어떤 분들은 긴 시합과 타임아웃이 없어서 그런지 박진감이라는 측면에서 비추어 볼 때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마지막 3 아웃을 잡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시합의 묘미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는 재미가 있는데 책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줄거리가 없어도 재밌는 책도 많이 있습니다.


이 책은 두 편의 중편 소설이 담겨 있습니다. 표제작인 <아름다운 나날>과 <프롤레테르카 호> 이렇게 두 작품이 실려 있는 이 책은 기억이라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로까지 열려 있는 것이라는 짧은 메시지로 작품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작품은 다르게 보이지만 여러 연결고리들이 있어서 왜 이 책을 한 권으로 묶었는지 납득이 가는 책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나날> 은 엄격한 스위스의 명문 기숙 여학교에 모인 소녀들의 억압된 생활과 은밀한 일탈을 꿈꾸는 한 여학생에 대한 열렬한 마음과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실려 있습니다. <프롤레테르카 호>는 아버지와 둘이 떠나는 조금은 지루한 항해 이야기이고 다소 불투명한 어머니와 오빠 등 혈육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단조로운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두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화자가 어린 소녀 들리는 점입니다. 한창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할 나이의 소녀들이 단조롭게 주변을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그들이 어느 한 곳에 갇혀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소녀는 가족과 떨어진 채 어려서부터 수도원에서만 생활해오고 있으며 기숙학교 특유의 규율적이고 닫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소녀는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채 그와 떨어져 결국 짧은 2주일가량의 선상 여행을 하고 있는데 배라는 공간 역시 어디로 갈 수 없는 닫힌 공간입니다. 억제된 감성과 자라나는 이성을 투영할 곳을 두 소녀는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바로 수도원 기숙학교의 친구와 아버지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자라 가는 감성과 이성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두 소녀는 그들과의 생활을 교감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P 72 : 나의 사랑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라기보다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기차는 마치 장난감 같았다. 그리고 떠났다. "난 슬프지 않아." 그녀가 내게 쪽지를 남겼다. 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P 91 : 그녀는 아직 죽은 자 들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너무나 강했다. 그것 역시 우리가 받은 교육 덕택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포기할 줄 아는 것, 그리고 좋은 소식을 두려워하는 것.



이러한 소녀적 감수성은 남자인 저는 다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남자인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위스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저는 너무도 다른 환경과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이 그저 독백만으로 되어 있는 구성 탓에 이해하기가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소개해드리고 싶었던 이유는 아름답고 절제된 문장으로 두 소녀의 내면을 잔잔하게 드러냅니다. 어떠한 구차한 설명 없이 두 소녀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너무 아름답게 까지 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 놓은 채 가만히 서술되는 글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조용한 가운데 파장이 있는 힘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이나 묘사 등이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어서 끝까지 비교적 빠르게 읽어 나갔습니다. 기억만으로도 이루어진 이 책은 어떤 새벽이 오기 직전 마지막 어둠을 다 하는 숲 속에서 달빛으로 슬며시 보이는 안개나 구름 같은 느낌이 나는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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