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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Dec 10. 2023

헤르만 헤세 시집

by 헤르만 헤세

어렸을 때 친구 하나는 서점 집 아들내미였습니다. 그 서점에 놀러 가면 외국 시인들의 시를 액자에 넣어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었고 저는 종종 그 시들을 읽고는 했는데, 제 발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헤세의 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헤세를 <데미안>으로 만나셨겠지만 저는 액자 속 시에서 헤세를 처음 만났습니다.



방랑길에

 

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되리니,

그러면 우린 창백한 땅 위에

몰래 웃음 짓는 싸늘한 달을 바라보며,

손에 손을 잡고 쉬게 되리라.

 

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니,

그러면 우린 쉬게 되리라.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둘이 밝은 길가에 나란히 서면,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바람이 또한 오고 가리라.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저 시가 맞는지 지금은 긴가민가 하지만 어머니나 형, 누나가 책 고르는 시간에 그 액자 앞에 서서 헤세의 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그때는 헤세가 어떤 작가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액자가 갖고 싶었고 어느덧 세월이 훌쩍 지나 나이가 든 지금, 그가 말년에 이야기했던 인생이란 짧은 것이리라는 말이 와닿는 걸 느껴버리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지나간 시간은 그것이 길든, 짧든지 간에 지나고 나면 모두 짧게 느껴져 버립니다. 어쩌면 그토록 짧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그만큼 더 애틋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외작가의 이름에는 헤세가 빠질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데미안>을 쓴 소설가라는 각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그를 아시는 분들은 책을 좋아하는 책 덕후로도 기억하실 겁니다. 헤세는 시인으로 데뷔를 하였고 자신은 누구보다 시인이고 싶어 했고 화가이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인은 독창적인 사람, 누구보다 섬세한 감각과 정화된 감정을 지닌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덕목은 굳이 시인이 되지 않아도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헤세는 말합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을 갖는 대신에 진실된 마음으로 쓰는 글을 중요하게 여겼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시인으로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그는 특정 작가의 시집을 추천하지 않았던 걸로 유명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순수한 영혼과 독창적인 감각을 문학적인 재능으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작가로서 아니 시인으로서의 여행을 이 책에서는 볼 수 있습니다. 데뷔를 했던 시집부터 말년에 쓴 시집까지 선별해서 모았고 그가 그린 그림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고독으로 가는 길


세계가 너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지난날 네가 사랑하던 모든 기쁨이 다 타버리고

그 재 속에서 암흑이 위협한다.


더 강력한 손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너는

네 속으로 갈앉아서

추위에 얼며 죽은 세계 위에 선다.

너의 뒤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여운이,

아이들의 소리와 은은한 사랑의 노래가 흐느끼며 울려온다.

고독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어렵다.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꿈의 샘도 말라 있다.

그러나 믿으라. 네 길의 끝자리에 고향이 있으리라.

죽음과 부활이,

그리고 무덤과 영원한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적거나 옮길 때 저는 헤세가 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책을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무분별하게 책을 읽는 것을 경계한다는 말입니다. 헤세는 책을 읽을 시간에 자신의 생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들을 새기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데 잘 걸어왔나 싶은 생각에 몇 글자 적기 전에 예전 글 들을 몇 개를 봤습니다. 부끄럽고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부족한 하나하나의 피드가 많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헤세가 말한 것처럼 나름 솔직하고 꾸미지 않게 쓰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어 하나에서도 시를 보고 세계와 신을 보는 헤세같이, 때로는 겸손하고 따뜻하고 한편으론 비판적이고 다각도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사고를 그치지 않는 헤세처럼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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