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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24. 2023

북항

by 안도현

1981년에 신춘문예에 당선 후 1985년에 첫 시집을 내놓은 이후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에 한 번씩 시인으로서 모습을 드러냈던 작가가 4년 동안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가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한 세월은 족히 1년이 넘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한 세월인 것일 수도 있고 시인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가장 두려웠을 언어를 다 소진했던 탓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20살 이후로 줄곧 시를 써온 시인은 등단 이후 가장 긴 공백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일기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1년을 쓰지 못하다가 쓴 첫 시가 <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가 시집 맨 처음에 실려 있습니다. 속세를 떠난 작가의 고요함과 함께 아무리 팍팍한 세월이라 할지라도 시인은 역시 놀아야 국화 눈썹도, 사슴벌레도, 감나무 그늘도 여여하게 보이는 법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상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려는 의지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시들과는 다르게, 전에는 읽기 편하면서 마음을 간지럽혔다면 지금은 여러 가지를 이리저리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저 같은 일반 독자에게 시는 좋은 것과 모르는 것 두 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인이 하는 말을 뭔가를 느끼고 알 것 같으면 좋은 것이고, 물음표를 남발하며 도무지 잡히지 않는 시는 모르는 것인데 죄송스럽게도 표제작인 <북항>은 여러 번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와닿지도 그리고 너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시집을 덮고 제일 아쉬웠던 점과 죄송스러웠던 점은 시인이 자신 있게 내놓은 대표작을 가장 낯선 시로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시집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교적 짧은 시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인데, 그 표현들을 읽고 있으면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이 어디까지 기쁨을 줄 수 있는지도 함께 알 수 있었고 응축된 몸집 안에 담긴 사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꼈습니다. 시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 더 큰 힘이 생긴 듯합니다.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귓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시는 아마 언어가 빚어내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의 진면목을 보는 것은 보는 이의 내공에 따라 다를 것이기에 결국 발견하고 읽어야 그것이 나에게 시로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전하지는 못해도 어쩌다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 아마 시를 읽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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