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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Oct 21. 2021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목적지 앞에서의 쓸쓸한 표정

바다를 향한 여행에 성공하고도 시한부 환자들이 짓는 쓸쓸한 표정

내용과 구성이 평범하진 않지만 무난하다. 코믹하지만 폭소하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한 촌극이다. 만약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없다면 내 영화의 평은 이 정도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운을 남긴다.


루디와 마틴은 자신이 시한부 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둘은 병실에서 테킬라를 발견한다. 주방에 가 소금과 레몬을 찾아내고 테킬라를 마시다가 마틴은 한 번도 바다에 간 적이 없다는 말을 흘리게 된다. 루디는 마틴에게 바다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천국에서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석양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둘은 죽기 전에 바다에 같이 가기로 합의하고 병원을 나온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땐 마침 문이 열려있는 차를 발견하게 되고, 둘은 그 차를 타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차만 있다고 바다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를 타려면 석유가 필요하고, 병원에서 입은 옷차림으로는 여행을 하기에 부적합하다. 어떻게 이를 해결할 것인가? 마틴은 총을 들고 강도 행세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총은 어디에서 났는가? 총은 차에서 나왔다.


총이 차 안에 있다니. 그렇다. 차의 주인들은 무서운 사람이다. 차는 알고 보니 백만 마르크를 운반하고 있던 마피아의 차였다. 트렁크에 백만 마르크가 있는지도 모르고 강도질까지 한 것이다. 이에 이들은 마피아와 경찰 모두에게서 추격을 받게 된다.


감독은 이 영화를 어두운 분위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마피아들은 어딘가 나사 빠진 듯 엉성하고, 경찰들마저도 이 어설픈 강도들을 잡을 능력조차 없다. 심지어 마피아와 경찰은 서로 대치하며 총알이 빗발치는 듯한 총격전을 벌이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영화는 경찰과 마피아를 상대하며 여러 고난을 겪은 두 사람이 바다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사실 루디뿐만 아니라 마틴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마틴은 자신이 세운 마지막 목표 바로 앞에 서자 두려움이 선다.


"마침내 왔어... 짠내가 느껴져?"

"응"

"루디... 할 말이 있어."

"알아. 내가 먼저 할게. 두려울 것 하나 없어."


그리고 둘은 바다로 간다. 그렇게 도착한 바다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햇살이 우리의 살갗을 태우는 그런 바다가 아니라, 우중충한 날씨의 파도다. 해가 져도 석양이라곤 전혀 보일 것 같지 않은 그런 잿빛의 바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우리의 표정은 어떠할까. 12년 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능을 끝냈을 때가 기억난다. 친구 대부분 시험이 망했다는 실망감에 허망하다고 했지만, 사실 그 허망감은 성적에 대한 실망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다를 본 루디와 마틴의 표정은 비슷하다. 영화 내내 곧잘 웃었던 루디와 마틴은 바다를 맞이했을 때 웃질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허망하고 쓸쓸한 표정이다.



그 허망하고 쓸쓸한 표정은 과연 바다가 황량해서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 같다. 영화는 바다를 본 둘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루디와 마틴은 쓸쓸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다가, 마틴은 어느샌가 쓰러져간다. 그런 마틴을 한 번 바라본 루디는 다시 바다를 보고, 영화는 노래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흘러나오면 끝난다. 노래마저 어딘가 쓸쓸하다.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내 마음속에서 남게 되었다. 루디와 마틴이 과연 슬펐기에 허망하고 쓸쓸한 표정을 지었을까? 그게 아닐 것이다. 영화는 1시간 반 정도의 상영 시간 내내 루디와 마틴의 바다를 향한 열정에 관객이 빠져들도록 한다. 관객은 안다. 그들은 죽음이 슬프지 않다.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을 얻었을 때 성취감과 동시에 두려움과 허망함이 찾아오는 인간의 마음을, 결코 행복만을 온전히 누릴 수 없게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를 기뻐하는 우리의 감정을.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엔딩은 그런 우리 마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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