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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Oct 21. 2021

[쁘띠마망] 어린 날의 세계, 그 복잡함에 관하여

우리는 사람을 특정한 틀 안에 집어넣어 생각한다. 그건 어린아이에게도 매한가지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도 그 틀 안에 쉽게 넣어놓고는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그리 간단치 않다.


쁘띠마망은 어머니를 잃은 한 여자의 딸에 관한 이야기이다. 딸 넬리는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러 외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들르는데, 엄마는 아무런 말 없이 밤에 다른 곳으로 간다. 그러다가 넬리는 우연히 숲 속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동갑 친구 마리옹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우연은 원래 영화에서 우연히 벌어지지 않는다. 우연은 필연으로 다가온다. 넬리가 발견한 마리옹은 바로 엄마 마리옹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




어머니를 잃은 여자 마리옹은 항상 우울해하는 여자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넬리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딸 넬리는 항상 어머니를 걱정한다. 그리고 무서워한다. 자신이 어머니의 짐짝인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젊은 시절에 낳게 된 넬리 자신이 엄마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하지만 마리옹은 그런 고민을 아는지 잘 모르는지, 자신이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을 넬리와 공유하지 않으려고 한다.


넬리는 항상 이런 부모의 태도가 불만이다. 넬리는 아빠에게 말한다. 왜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지 않느냐고. 왜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알려주고, 자신들의 실제 어린 시절을 숨기느냐고. 넬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이 무서웠고, 무엇이 힘들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세대 간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넬리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맞이하고 나서야 엄마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직접 소통하게 된다. 넬리는 어린 시절의 마리옹을 만나서야 직접 무엇이 두려웠고, 무엇이 힘겨운지를 소통하게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향수에 젖어 떠올리곤 한다. 향수란 언제나 고통스러움을 배제해낸 기억이다. 향수에 젖은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은 고통이 존재하지 않고, 고통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과 슬픔 없는 회상은 역설적이게도 그 시절 행복을 감각하던 방식마저도 단순화시켜 버린다. 그저 천진난만함으로 세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단순하게만 돌이키곤 했던 어린 시절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음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에게 무엇이 두려웠는지, 무엇이 슬펐는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어떻게 행복을 발견했는지.


우리가 향수에 젖어 무엇이든 천진난만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건 과연 어린 시절뿐이던가. 한국에서는 어떤 특정한 나이대의 고민을 병으로 치환해서 말하곤 한다. 질풍노도의 중학교 2학년은 중2병. 무언가 알 것 같다는 생각에 도취되곤 하는 대학교 2학년은 대2병.


어린아이와 어린 시절의 엄마가 경험하는 따스한 소통의 이야기는, 반대로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매서운 불통의 현장을 되짚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이 따스한 영화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음을, 그리고 그런 복잡함을 이해하지 않는 소통의 불건전함을 비추어주는 따스한 횃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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