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목표를 상정하지 않은 전략의 허무맹랑함
최근의 지정학적인 환경이 굉장히 위험하게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미중대립이 점차 격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직접 침공했고,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보낸 정황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일부 사람들은 북한 군인들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있으니 참전을 위해 병력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현실을 부정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과연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였나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와 교전을 벌이더라도 러시아군인 것으로 위장하고 전쟁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보내는 방안이 검토되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무슨 논리인지 당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호하기만 하면 침공을 당한다거나, 경제 제재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 건가요?
한국 사회에서 전략에 대한 어휘들이 나올 때 항상, 현재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전략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숙고한 후에 전략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전략적인 제스처가 무엇인지만을 말하고, 그러한 제스처가 즉자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는 방식으로만 연결됩니다. 그러면 '전략적 모호성'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팔괘진 같은 것인가...? 무적의 치트키 같은 것....? 이런 생각만 듭니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상대를 파악하고 나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서 상대=대국, 나=소국 정도의 깊이로만 생각하면 그저 사대주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상대를 파악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의 입장, 상대의 목표, 그리고 상대가 추구하는 것 등을 파악하고, 우리를 파악할 때도 우리의 입장과 목표도 분명히 파악해야 합니다.
현재 러시아의 상황은 전쟁 수행에 의해서 손실이 막대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어떻게든 지원을 얻어내야 한다 정도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상대가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수행하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과거의 우방이었던 북한의 지원을 얻겠다, 그러나 한국과 완전히 틀어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 약간은 협박조로 나오면서 이후에 전쟁이 끝나면 북한과 멀어지고 다시 한국과 우호관계 맺을 거니까 조용히 있으라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우리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정치적인 시야가 좁았고, 한반도천동설에 의해서 다른 나라에게는 아주 크게 고려할 사항이 아닌 대북한 관계, 그리고 대한국 관계가 마치 다른 모든 나라에게도 아주 중요한 변수인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여러 국제 관계 중에 하나이고, 중요해도 또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북중러를 묶어서 생각하고 원팀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어떠한 상수처럼 두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 국력이 팽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상시적으로 전쟁에 대한 위협이 있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기에 비교적 강대국이 이야기를 하면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한은 쓸 수 있는 외교적 선택지 중에 하나이고, 쓰기 꺼림칙한 상황이 펼쳐졌을 때 북한과의 협력 강화 선택지는 적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방산 산업이 발달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선택지는 러시아에게 북한과의 협력 강화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일이 러시아와 궁극적으로 러시아가 한국과 멀어지는 선택지일까요? 그렇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종전 이후에 한국과의 관계는 다시 가까워져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안보 환경이 불안해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분명한 선택지는 북한을 협력 가능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타국가들의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하는 상대에게 명확하게 불이익을 주어야만 합니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 다음으로 그것은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적 목표일 것입니다.
상황 파악과 명확한 전략적 목표 없이 만능의 치트키처럼 말해지는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전략적 모호성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만능의 치트키처럼 말해지는 이 상황은 허무맹랑하게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