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2024년 6월 5일 얼룩소에 올렸던 글

by 심준경

한일관계: 모방 시대의 논리, 극복 시대의 논리, 그리고 경쟁 시대의 논리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늘 복잡하다. 세계 식민지의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관계가 아마 한국과 일본의 역사 아닌가 싶다.



식민지는 늘 있었지만, 본국의 엘리트들이 식민지의 모든 자원을 자본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서 식민지 주민들에게 문화적 동질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근대 식민주의는 특이점을 지닌 역사다. 근대 식민주의는 근대 시대이기에 필요한 역사였으며, 근대 시대에만 가능한 역사였다. 그런데 그 특이점을 지닌 역사의 한 국면에서 가장 특수한 관계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였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근대 이전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으며, 고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게 문물을 전해주는 입장에 있었다. 중세와 근세 시대에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까지 갔으며, 임진년의 전쟁은 두 사회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아주 깊은 연관성을 지닌 나라였다.



그랬던 두 나라의 관계가 바뀐 것은 해양을 통해 팽창하던 서구 제구주의 세력과 어떻게 조우하는지에 의하여 바뀌었다. 두 나라 모두 왕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였다. 그랬던 조선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나선 흥선대원군은 서구를 배척함으로써 왕권이 보장받는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일본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나선 메이지 유신 주도 세력들은 서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왕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차이가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그레이트 게임과 맞닿으면서 엄청난 차이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화하는데 성공한다.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는 두 가지 시대가 존재했다. 일본을 모방해서 일본보다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다. 그리고 일본의 국가 모델이 가진 한계를 마주보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일본보다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두 세대를 이끈 주도 세력(유신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사이에 있는 끼어있는 세대이기에 그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두 가지 시대 논리가 모두 한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을 모방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의 경우, 사람들은 일본인들은 정치인을 빼고 모두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성실하고 근면하며, 절약 정신이 강하고, 무슨 일에 부딪히든 방법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이 면모에 주목하여 한국은 국가 만들기에 성공하였다. 반면에 한국이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의 사람들은 일본인의 비겁한 면모를 많이 주목했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약자에 대해서는 언제나 가혹하게 군다. 그렇기에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사회에 아직까지 많은 차별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 면모에 주목하여 한국은 민주화와 차별 철폐에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일본인에 대한 가치 판단을 제외하면, 두 가지 모두 일본의 근대화가 만들어낸 일본인의 민족성에 대한 괜찮은 이해라고 생각한다. 근면성실, 절약, 무슨 일에 부딪히든 방법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말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인과관계 파악 이전에 현상에 대응하는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대응이 근본적인 원인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더라도 말이다. 또한 일본인들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특징이 있다는 면모도 있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모방 시대의 논리와 극복 시대의 논리를 적절히 잘 섞어서 생각하면 새로운 시대의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방 시대의 논리와 극복 시대의 논리 모두, 일본보다 잘 살아보자는 논리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여진다. 모방 시대의 논리는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시대 논리를 구성했었고, 극복 시대의 논리는 일본보다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시대 논리가 구성되었다. 두 시대 논리 모두 어떤 면에서는 성공하였다. 일본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단계까지 왔으며, 삶에 대한 만족도도 일본보다 높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두 가지 시대 논리 모두 성공되었으므로 폐지되어야 하는 시대 논리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논리 모두, a의 b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a보다 잘 살아보자는 논리 구조를 가진 특수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게 된 지금 그 논리는 폐기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시대는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특수한 면모에 주목할 이유는 없다. 일본의 여러 다양한 면모의 장단점을 가치 판단을 배제한 후 파악하고, 장점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단점이 있다면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게 일본은 더이상 특수한 존재가 아니며, 우리가 경쟁에서 뒤쳐져서 특수한 존재가 되는 일이 더는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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