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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Mar 23. 2023

하늘로부터 오는 힘


3월이면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 간에도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의 시간이다. 첫 아이를 보낼 때만큼의 긴장은 아니지만 촉각을 세워가며 혹여나 빠진 것은 없는지, 학교 게시판이나 톡방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보내온 통신문을 깜박했다며 경쟁을 하듯 앞 다투어내미는 아이들. 

“바쁜 아침은 사절입니다. 저녁에 꺼내 놓으세요.”를 반복하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무법자들의 외침을 살짝 눈감아 준다.


한 줄 한 줄 마음을 담아 읽어 내려가며 마지막 보호자 서명까지 마무리하고 있을 즈음, 막내가 다가와서는 “엄마는 정말 진심으로 글도 작성하고 학교일도 엄마가 거의 하는데 보호자 성명도 엄마이름 적으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


아니! 안돼!~~ 엄마는 이 서명 란에 얼마나 나의 아빠이름을 적고 싶었는지 몰라. 나와 성이 같아서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그런 삶을 꿈꿨었는지... 

아~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지요? 왜, 언제 돌아가셨어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 할아버지는 공부도 많이 하시고 창을 하셨던 능력이 많은 분이셨는데 아빠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은 움직여지지 않았고 실패와 좌절을 계속 겪으시면서 분노가 많이 쌓인 것 같아. 

너무나 이른 시기에 나는 기억도 거의 없이 처자식만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좋지 않은 모습으로 떠난 아빠가 없는 그 자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고 무서웠는지 몰라.

정말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을 거 같았는데 내가 영원한 아빠를 만나고 나서는 우리 아빠를 처음으로 

마음에 품어지게 되었어.

인간의 그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는 완전히 채울 수 없기에 지금이라도 살아계신다면 그분을 꼭 소개해 

드렸을 텐데...


너희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가수나 연예인들의 약물중독이나 죽음을 보면 그들의 한계나 결핍을 다른 

방법으로 채우는 모습들이 더욱 안타깝고 그래서 인간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은 간절함이 밀려오는 이유야.


아이들은 서둘러 학교로 향하고  그들의 흔적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이 최고의

 시간을 위해 이어폰을 챙겨 산책길을 나섰다.


집안 청소를 하면서 들을 때와는 다른 최고의 집중력과 자연으로부터 오는 햇살과 바람의 에너지를 받으며 

한참을 걸어 초중고가 함께 나란히 붙어 있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때쯤이었다.


한참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오전시간인데 아주 왜소하고 어린 친구가 다리를 비틀거리며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친구야, 다리를 다쳤니?”

“다리는 힘이 없어서 그렇고 아침에 상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학교에 와서는 

견딜 수 없어서 보건실에서 누워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가는 길이예요.”

아주 어리지만 상냥하고 또박또박 말을 전해온다.


이모는 무언가 걱정을 하거나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음식을 먹으면 바로 배가 많이 아파왔어. 그럴 때면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배를 만져 주면서 이렇게 기도해. 

생각 속으로 파고드는 질병은 내 몸에서 떠나가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은 살아날 지어다! 치유될 지어다! 

재창조될 지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조금 있으면 배가 평안해져 와.


이모는 여기 가까운 어린이집 선생님이야.

아! 그렇구나. 저도 그 어린이집을 엄마가 간호사 여서 2살 때부터 끝까지 다녔어요. 지금도 할머니가 간혹 

오실 때도 있지만 바쁘셔서 저 혼자 맨날 있어요.

나도 엄마가 바쁘고 집에 아무도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어서 많이 외롭고 무서웠는데 그때는 아무런 힘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하나님이 주신 그 이름을 부르고 말씀을 듣고 있으면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책도 보고 

어려운 도전도 하게 돼.


정말요? 

어느새 아이의 얼굴빛이 살아나 있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날리며 다시 시작하자는 약속을 하고 집을 향해 돌아오는 길.

아침에 보았던 그 길, 그 꽃들까지도 모두 반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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