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안의 코끼리
불과 10년 전에 바로 옆 나라 원전이 폭발했다. 기술력과 안전설비라면 으뜸을 자랑하던 그 나라는 여전히 사고 뒤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대피한 주민 대다수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마을 공동체가 해체됐고, 산업은 붕괴됐다. 또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는 문제로 이웃국가들과 충돌을 빚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요즘 지속적으로 탈원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에는, 경제가 사람의 안전과 생명보다 우선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이들은 원자력발전소가 그 어떤 에너지원보다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라고 말한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만들어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인데, 사용후핵연료 언급은 쏙 빼먹는다. 원자력발전소 가동의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반감기가 길게는 수만 년에 이르지만, 한 데 모아두는 것밖에는 처리 방법이 없다. 그마저도 저장소는 포화상태이지만 새로운 장소가 마땅치 않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단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성 주장에도 함정은 숨어있다. 사고 처리 비용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유출하겠다는 것도 그것이 가장 값싼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고 원전은 아직도 방사능 물질을 뿜어대고 있어 앞으로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예정이다. 우리의 원자력 기술력은 완벽해서 절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단 주장은 하지 말자. 원전 사고를 겪은 나라들도 전부 그렇게 생각했다. 사고는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다.
원전이 동해안 지역에 밀집한 것도 지적할 문제다. 에너지 소비량은 수도권이 가장 높지만, 대부분의 발전소는 지방으로 밀어두는 형국이다. 원전 특성상 해안가에 자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님비현상과 다를 바 없다.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인 고리 원전 단지의 반경 30km 내에 340만 명이 살고 있다. 원전 주변에 이 정도 인구 밀도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탈원전이 섣부르다고 주장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기한 문제는 외면한 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발전소 운용 비용만을 가지고 원전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계속해서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민의 안전을 볼모로 값싼 전기를 누리겠다는 주장과 같다. 그마저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걸려있어, 장기적 관점에서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볼 근거도 없다.
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모든 것은 이미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원전에 대한 우려는 모두 현실의 문제이며, 아픈 과거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방 안의 코끼리를 못 본 척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