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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un 28. 2021

[작문연습158] 청년비서관

- 성적순과 재산순이 묘하게 일치하는 공정의 결과

 공정의 패러다임은 변할 수 있을까. 공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균열이 일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공정은 성적순을 의미했다. 시험이야말로 개인의 노력에 최적의 대가를 지불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사회적 자원은 성적에 따라 차등 배분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면서 시험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삶의 분기마다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 서다. 공정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리는 이유다.


 물론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합의는 그렇게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공정에 철저히 적응한 이들도 많다. 지금의 공정에 역행하는 시도는 어김없이 커다란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얼마 전 청와대는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청년 비서관직에 임명했다. 1급에 상당하는 별정직 공무원이다. 청와대 발표 이후 ‘불공정’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자격도 증명되지 않은 인사를 고위직에 앉혔다는 불만이다. 박 비서관은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공무원 시험도 본 적이 없다.


 일반직 공무원의 상대적 박탈감을 전하는 이들도 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5급 공무원도 20년을 넘게 일해야 갈까 말까 한 고위직에 정권 눈에 들어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을 열심히 공부하는 청년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이어진다. 일반직과 달리 임기가 짧은 별정직의 차이를 명확히 하더라도, 공시생 입장에서 이번 청와대 인사가 공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새로운 답을 해야 할 때다. 그간 절대적 가치로 믿고 따라왔던 공정의 가치는 과연 노력에 부합하는 대가를 지불했는가. 성적순과 재산순이 묘하게 일치하는 공정의 결과 앞에서, 우리는 높은 성적이 많은 재산에 앞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재산이 높은 성적의 조건이 된 현실을 알고 있다. 시험을 보지 않고 고위직에 올랐다는 비판에 무조건 수긍할 수는 없는 이유다.


 현상 유지를 바라는 이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는 이너서클 가장 바깥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없다.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이들이 이너서클로 진입하기 위해 독서실 책상에 앉아 기출문제를 풀 때, 누군가는 독서실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개인의 형편 차이를 등한시하는 오늘날의 공정에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힘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새로 임명된 청년비서관이 취지에 따라 청년의 목소리를 잘 대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하나의 등용문만을 고집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불평등의 존재에 공감한다면, 이런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공정=시험성적’이라는 단순한 등식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지금과 다른 미래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공정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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