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질의 핵심은 ‘당장 모면’
실속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두고 ‘삽질한다’라고 표현한다. 삽질은 대표적인 군대 용어다. 병사들을 가만 놀릴 수는 없고, 뭔가 하는 시늉은 해야 할 때 삽질을 시킨다. 애꿎은 땅을 파고, 다시 묻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지금 성추행 피해 공군 사망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대처가 삽질의 전형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라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보여야 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조치는 교묘히 피하며 변죽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 및 인권 전문가들은 군사법 체계의 독립성 부족에 주목한다. 군대 내 범죄의 신고ㆍ수사ㆍ재판 전 과정이 지휘관에 종속돼있다보니, 독립적인 재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관할 지휘관은 재판부에 법 전문가도 아닌 심판관을 배정해 판결에 개입할 수 있고, 최종 형량의 3분의 1을 감경할 권능도 갖고 있다. 연령과 계급에 따른 정년이 있는 군 진급 시스템은 법관이라도 지휘관의 눈치를 보게 한다.
이는 20년 가까이 이어진 문제의식이다. 군 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압박이 쉬운 군사법원 체계 때문에 군인들도 민간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실제 군사법원에서 처리되는 사건의 90% 이상이 군법과 무관한 성범죄와 교통법규위반 등이다. 국방부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이런저런 장치를 더해가며, 삽질을 해댔다. 하지만 독립적인 군사법 체계를 만드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은 회피하니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국방부가 군사법원을 고집하는 이유는 군법의 전문성과 전시대비다. 앞서 언급했듯 군법 위반으로 열리는 재판은 그 수가 적을뿐더러, 전문성은 민간 경찰과 검찰, 판사도 기를 수 있다. 필요하면 민간에 군법과 행정 전문가를 파견해 재판 절차를 자문하면 될 일이다. 또한 전시 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군사 훈련하듯 매뉴얼을 만들어 놓으면 된다. 그런 일을 하라고 실제 전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전시를 가장한 훈련이 있는 것이다.
명확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음에도 그때그때 삽질 대응에 그치는 이유는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이미 고이고 고인 물 탓에 억울한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다. 민간에선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지는데, 어느 누가 군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인구 부족으로 향후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국방부의 예측은 엄살로 드러난 셈이다. 지금 당장 누구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 군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삽질의 핵심은 ‘당장 모면’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사람들의 관심은 사그라들고, 군사법원 개혁 움직임도 힘을 잃게 되리라 생각할지 모른다. 공군 성추행 피해 유가족들이 크나큰 아픔을 지닌 채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도 그러한 상황을 우려해서일 터다. 이번에는 고인물을 게워내는 근본적 개혁에 성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