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상하는 국제적 위상과 해결이 난망한 내부적 모순
오랜 시간 ‘선진국 대한민국’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마치 둥근 네모처럼 형용모순의 느낌마저 들곤 했다. 개발도상국 한국은 으레 국제 관계에서 ‘을’의 지위를 면치 못했고, 그러한 현실을 외면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국뽕’으로 조롱받기 일쑤였다. 이 나라는 자랑할 만한 게 별로 없다는 자조적 태도가 만든 현상이었다. 그 이면에는 일제 식민지 역사와 강대국 사이에서 자주적 외교의 행보가 제한받는 현실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UNCTAD(유엔무역개발회)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유엔무역개발회에서 개도국이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GDP 10위, 수출 규모 7위 한국은 객관적 수치상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에 초청돼 사실상 G8 국가로 대접받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이 받은 환대는 변한 국제적 위상을 확인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국인이 국뽕에서 ‘자조’를 벗겨낸 시점은 코로나19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중국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급등한 이래,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민의식에 기반한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감염자 추적 시스템은 금세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사이 한국은 코로나로 집 밖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재밌는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부상하는 국제적 위상 한편에는 해결이 난망한 내부적 모순 또한 존재한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값에 따른 주거난 심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계층 고착화, 반등할 줄 모르는 출산율과 부족한 청년 일자리까지 모든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치인들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찰리 채플린의 말에 빗대어보면, 한국의 풍경은 멀리서 볼 땐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셈이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있다. 애초에 한반도 이남의 현실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단 사실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소란은 위기의 전조가 아닌 역동성의 반영이었다. 절대 풀릴 것 같지 않던 실타래도 결국 풀어내며 여기까지 왔다. 그 결과 ‘식민지 출신’이란 점을 제외하고서도 사회ㆍ문화ㆍ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국제 사회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지금, 우리의 문제 해결 능력은 한층 더 성숙해질 예정이다. 형용모순 같던 선진국 대한민국이 자연스럽게 들릴 날도 곧 찾아오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그 공은 이 땅에서 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