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설파했던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 드디어 국내에도 상륙했다. 해방 직후 미군의 지위를 두고 서다. 유력 대선 주자가 해방 직후 한반도 이남에 주둔한 미군을 ‘점령군’으로 지칭하자, 때아닌 색깔론이 몰아치고 있다. 보수 야권의 대선주자와 정치인을 중심으로 남한을 공산 세력으로부터 구해준 미군을 고작 점령군 취급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제기되면 서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류 언론의 공세에 대항했던 방식과 흡사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명백한 거짓에 대안적 사실이란 탈을 씌워 사실(fact)을 부정했다. 해방 직후 한반도 내 미군의 지위는 의심의 여지없이 점령군이었다. 작금의 논쟁이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상고사를 두고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당시 미군의 수장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한반도 진군 후 포고령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점령군으로 명시했고, 관련 자료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처지처럼 점령군을 점령군으로 부르지 말라는 상황이다.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야 했던 색깔론은 또다시 등장해 대선판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안적 사실보다 우리 정치의 대안적 사실이 더 질이 나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념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 이 땅에서 다시금 억지 이념 다툼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부풀리기도 한몫했다. 사실관계를 따지면 쉽게 정리될 사안이 언론을 통하자 역사 인식 논란으로 둔갑했다. 대안적 사실의 맹점은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사안에 사회적 관심을 허비하게 한다는 데 있다. 별것도 아닌 일이 양복 입고 근엄한 표정을 한 남성의 몇 마디에 특별한 일이 되고, 죽자 살자 싸워 이겨야 하는 논란이 된다.
대선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여야 대선 주자는 어림잡아 20명 안팎. 얄팍한 철학과 어쭙잖은 실력으로 경제 규모 10위의 대한민국을 이끌 수는 없다. 예비 지도자의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산적해 있다. 고작 대안적 사실에 발목 잡혀 있기에 검증의 시간은 짧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러한 논쟁은 반복될 전망이다. 유권자의 관심을 엉뚱한 곳에 집중시킴으로써 얻는 정치적 이익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바쁜 국민을 대신에 나랏일을 돌보겠다는 사람들이 외려 국민의 일을 가중하는 꼴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