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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Mar 01. 2022

[취재후기3] 보행권 침해하는 버스정류장

-불편을 호소하기보다 감내하는 교통약자들

<보행로를 잠식하는 버스 정류장>

최근 도심지에는 다양한 기능을 갖춘 버스정류장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방범 초소를 방불케 할 만큼 커진 실내외형 정류장입니다. 일부 정류장에는 냉난방 기기는 물론 음용시설과 미세먼지 저감 장치까지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객들은 추위와 더위에 이어 공해까지 피할 쉼터가 생긴 셈입니다. 이 같은 정류장은 버스가 자주 오지 않고 노선이 적은 지역에서 더 사랑받습니다. 이용객 상당수도 고령층이니 노인 복지 측면에서도 효용이 높은 셈이죠. 그런데 이런 정류장이 교통약자의 보행권을 침해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버스정류장이 너무 커진 나머지 보행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충분한 보행로의 폭은 얼마인가?>

문제가 되는 버스정류장을 찾아갔습니다. 한눈에 봐도 보행로의 절반 이상을 정류장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줄자로 측정해 보니 버스정류장 크기는 2m가량. 이동 가능한 보행로는 1m 80cm 정도였습니다. 좁아지긴 했지만, 국토교통부 지침에 따른 1.5m 조건은 충족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침을 모든 환경에 일괄 적용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찾아간 정류장은 붐비는 시장에 위치했는데 인근 상인들이 보행로에 쌓아둔 물건까지 생각하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보행로는 더 좁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장 근처는 원래 북적이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비좁은 길도 잘 다녔습니다. 보행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어보였습니다.


<교통약자의 시선에서 충분한 보행로 폭이 보인다>

하지만 보행로는 두 다리가 온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전동휠체어 등 전동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고령층 등 교통약자는 이 길목을 어떻게 오갈까. 그들에게 직접 물어야 했습니다. 고민하던 순간 길 건너에서 전동스쿠터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전화기를 붙들고 되지도 않는 섭외에 힘을 뺄 바에는 뛰는 게 낫겠다 싶어 미끄러지듯 굴러가는 전동스쿠터를 향해 달렸습니다. 전동스쿠터는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오 분쯤 달렸을까. 전동스쿠터가 한 상가 앞에 멈췄습니다. 포기가 아른거리던 때였습니다. 숨을 고른 뒤 전동스쿠터에 앉아있는 어르신께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동행을 요청했습니다.


<불편을 호소하기보다 감내하는 교통약자들>

어르신께서는 이미 그 길목을 알고 있었습니다. 2019년에 정류장이 들어선 후로 그 길목을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정을 잡고 며칠 뒤 어르신을 다시 만나 동행길에 나섰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니 보행로의 폭은 전동 보조기구가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좁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주변 환경이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길목에는 병목현상이 일어났고, 좁아진 틈을 전동 스쿠터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아주 천천히 통과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로 어르신은 30초면 지날 거리를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우회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전동 보조기구 이용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통약자들은 불편을 호소하기보다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유명 관광지에 새로 설치된 정류장은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열 명 넘게 수용할 만큼 커진 정류장은 이동 가능한 보행로를 80cm 남짓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큼의 폭이었습니다. 명백한 국토부 지침 위반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전동 보조기구 이용자가 이 길목을 지나려면 차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동 보조기구 이용자는 법적으로 보행자이기 때문에 차도를 이용하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2중 3중의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습니다. 


<나의 한계를 다시 한번 체감한 현장 취재>

대중교통 이용자의 상당수도 고령층으로 교통약자입니다. 이들의 편의를 위해 발전한 버스 정류장이 또 다른 교통약자의 보행권을 침해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관련 사례를 모아 보도하자, 지자체 담당 부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보행로 확장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버스정류장을 짓기에 앞서 왜 보행로를 우선 확장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동 보조기구 없이 이동할 수 없는 교통약자를 향한 부족한 관심이 가져온 결과였을 겁니다. 하지만 남의 탓만 할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누군가 얘기해 주기 전까지는 몰랐으니까요. 제가 가진 한계를 다시 한번 체감한 취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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