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ke being alone
거대하고 느린 땅, 캥거루와 코알라가 생각나는 남반구 미지의 땅, 365일 화창한 햇살과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땅, 내가 사는 호주라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마이너리티에 속한 삶을 자유로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구적으로도 마이너리티에 속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자발적 1인가구의 삶을 사는 나에게 가족 중심의 호주 사회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부러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을 가면 시집간 친구들이 육아에 일에 시월드에 지쳐 신세한탄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는커녕 안타까웠다. 그리고 인사치레지만 해마다 명절이면 듣는 ‘시집 언제 가냐?’는 친척 어른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잔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나도 나지만 그런 딸내미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오죽할까.
호주에 온 지 12년이 지났다. 시드니 한복판에는 삼성, 신한은행, 심지어 백종원의 본가 등 없던 건물들이 생겨났고 호주전역 10만 명이던 교민은 이제 12만 명에 이르렀다. 한국이나 호주나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적 사고방식은 그대로인 것만 같다.
사실 사회적 통념에 부합할 수 없는 나의 타고난 천성을 탓하며 울던 날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 통념이 편견이 되어 개인의 본성을 말살한다고 분노와 비난을 일삼던 날들도 있었다. 사실 혼자사나 둘 이사나 외로운 건 매 한 가지다. 그러나 현실은 커플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싱글에게 사회 비주류, 마이너 딱지를 씌워준다.
예를 들어, 미혼모/미혼부 1인가구의 경우 경제적 지원은커녕 도덕적/윤리적 전과범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 이혼을 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싱글대디의 경우, 애 딸린 이혼녀/이혼남 딱지가 붙는다. 게다가 비혼을 추구하는 싱글여성/남성인 경우, 저출산 주범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설상가상으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는 노후대책은 하지 않고 젊었을 때 놀고먹어서 그렇다며 혀를 쯧쯧 찬다.
2000년대 들어 혼자 사는 가구의 비율이 참 많이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율은 35.5%이다. (출처: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5065) 2000년 기준 15.5%에 비하면 급격한 수치가 갑작스레 증가했다.
호주의 경우, 4 가구 당 1 가구, 즉 호주 국민의 25%가 1인 가구(single-person household)이다.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오름이 아니라 2차 대전 종전 후 이민자들이 늘면서 서서히 증가했다. 호주 사회의 1인가구 특징은 나이가 들면서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많다. 그리고 1인 여성가구의 경우 고소득 고학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1인 남성가구의 경우 반대로 저소득 저학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처: www.aifs.gov.au )
통계 수치를 보면 여느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나 호주나 1인가구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증가 원인을 살펴보면 비슷한 듯 다르다. 비슷한 원인에는 평균수명 연장으로 늘어난 고령 1인가구의 증가, 늦어지는 결혼과 출산율 저하,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가, 긱 경제의 상승 등을 들 수 있다. 다른 원인에는 사회통념(social norms)의 유동적 변화이다. 호주사회는 1인가구에 대한 수용적 태도로, 독립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게 편안한 사회이다. 그래서 변화하는 사회통념과 함께 1인가구 또한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주사회의 미혼모(teenage mum)/미혼부(teenage dad),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single mum)/이혼남(single dad), 비혼녀(singledom female)/비혼남(singledom male)으로 이루어진 1인가구는 국가의 경제적 복지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희망차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호주 통계청(ABS)은 2036년까지 1인가구의 비율이 65%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리고 호주 가족연구원(AIFS)은 어떠한 가족 형태보다 1인가구가 전통적인 4인가족 및 핵가족의 가구를 넘어서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때즘이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가 되어 호주 사회의 가구적 주류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호주사회의 1인가구가 살아가는 삶은 ‘나 혼자 사는 것(living by yourself)’이라기보다 ‘나 데리고사는 것(living with yourself)’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혼자는 외롭고 보통의 삶이 아니다는 사회통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우울해진다. 그런데 나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면 되려 ‘오늘은 날 데리고 뭘 해볼까?’라며 즐거워진다. 그렇게 즐거운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는 ‘둘이 사나 혼자 사나 외로운 게 인생이니 우리 서로 포용하며 살자’라는 믿음과 연대로 성장한다.
사실 보통의 삶(normal life)을 사는 게 가장 힘들다. 평범한 게 위대하듯이 보통의 인간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진심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반면 세상에는 자의든 타의든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의 삶을 살지 않고 특별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사회통념(social norms)을 거스르는 인간으로 분류하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어 살아가듯이 전통적인 4인가구에서 1인가구로 변화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추석이 코앞이다. 더 이상은 시집/장가 언제 가냐는 명절 인사말이 오고 가지 않았으면 한다. 진심으로 잘 지내냐는 인사가 오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