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도통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창피하지만 두어 번 끄적거려 본 게 전부다. 다른 작가님들 글을 읽는 횟수도 줄고 독서량도 확실히 줄었다.
‘에이, 읽어서 뭐 해~ 잠이나 더 자야지. 내일도 일하려면 쉬어야 해.’
그렇게 강도 높은 새벽 노동일로 몸이 쇠해지면서 오롯이 글에 몰입하던 정신력이 흐트러져갔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작은 글씨마저 뿌옇게 보였다.
하루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을 헛디뎠다. 잘못하면 한바탕 구를뻔했다. 머리부터 등뒤로 식은땀이 났다. 그렇게 호주 Specsavers를 찾아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상담실에 앉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마흔입니다.’
‘노안이 오셨네요.’
‘네? 벌써요?’
‘근시가 있는 분들은 노안이 오면 가까이 있는 것도 잘 안 보이고 멀리 있는 것도 잘 안 보여요.’
‘그럼 렌즈를 바꿔야 하나요?
‘네, 편하게 다초점 렌즈 사용을 추천드려요. 굳이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Multifocal lenses… 다초점… 할머니들이 쓰는 돋보기안경을 내가? 벌써?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널찍한 사각렌즈가 상, 중, 하 세 층으로 나뉘어 맨 아래층이 돋보기 역할을 했다. 한 이틀 적응하느라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지만 눈이 시원하게 잘 보여서 편했다. 작은 글씨도 잘 보였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지만 노화의 시작은 노안이라고 했던가. 갓마흔에 돋보기에 기대어 글을 읽는 게 영 찝찝하고 불편했다.
휴… 불편함이 늘어나는 게 늙는 거구나. 내 꿈은 할머니가 돼서도 번역일을 하는 건데 벌써 이렇게 눈이 안 보여서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생긴 큰 변화였다.
그렇게 노안을 시작으로 퇴행성 질환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MRI결과 터진 목 디스크 위로 세 개나 더 돌출되었고(multilevel disc bulges) 척추 후관절 관절염(facet arthritis) 및 오른쪽 어깨 활액낭염(bursitis) 진단을 받았다. 사실 눈도 눈이었지만 목과 어깨통증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쓰는 게 많이 힘들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선 노화로 건조해진 디스크는 반복적인 노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니 일 좀 줄이고 쉬라고 하셨다. 먹고살려면 노동일을 해야 하는데 휴… 노화에 취약한 내 몸이 원망스러웠고 오르지 않는 번역료가 원망스러웠다. 하필이면 세상 수많은 직업 중에 돈 안 되는 번역일이 왜 제일 즐겁고 재밌냐고!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동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생각의 회로를 전환하기로 했다. 또 한 번 내려놓자. 은행 배 불리는 일 그만하고 울릉공 아파트 정리하자. 제발...
정말이지 인생은 내려놓음의 연속이다. 그리고 글로 먹고사는 일은 부의 세계와 먼, 참으로 고매한 일이다.
브런치야, 미안해.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노동일만 하느라…
브런치야, 미안해. 돈 안 되는 글쓰기 멀리하고 회피하느라…
브런치야, 미안해. 저렴한 삶에 취해 고매한 삶을 잊고 사느라…
마지막으로 쉼보르스카의 미완성 시집 [충분하다]에서 읽었던 시구절이 생각났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 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 환상의 경우는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 – 시 ‘여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