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빨리 학교를 들어갔지만 피아노 대회, 그림, 글짓기 대회를 모두 휩쓸고 다니는 아주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잠시 미국 초등학교를 다녔던 때도 어김없이 빛이 났다.
영어는 유창하게 못하더라도 무슨 일인지 언니반 아이들은 언니를 너무도 좋아해서 쉬는 시간에도 따라다니고 한 남자아이는 청혼까지 했더랬다.
반면 난 내향적이고 먹는 거 이외에는 별 관심 없는 아이였는데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는 낯선 환경 속에 긴장상태로 더 기가 죽어있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 남자아이가 나한테 욕했다며 육탄전을 벌여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기도 한 것을 볼 땐 나름의 파이팅이 있는 소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듬해 한국에 돌아와 학교에서 줄넘기 연습 숙제가 주어졌고 줄넘기를 돌려봤는데 발에 걸려서 잘 안 넘어갔다. 그뿐 아니라 발에 걸리면 얼마나 아픈지.. 난 몇 번 해보고 바로 포기했다. '난 이거 못 하는 사람이야.'
그때 우리 집 협상가 아빠가 등장하셨다. "이거 한 번 넘으면 아빠가 선물 사줄게." 보상에 민감했는지 아빠한테 칭찬받고 싶었는지 아빠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하지만 줄넘기 한 번 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한번 넘고 두세 번 넘으니 아빠가 주기로 한 보상보다 더 큰 뿌듯함이 밀려왔다.
'와! 내가 줄넘기를 한번 넘었어~'
그 후 2년 뒤 4학년 때 우연히 내 가능성을 발견했는데. 바로 달리기였다. 키가 반에서 늘 큰 편이기도 했지만 학생 때 핸드볼 선수였던 엄마의 손놀림과 가뿐함은 넘사벽이었고, 언니는 이미 고무줄계를 평정한 육상부 출신이었기에 난 그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에 50m 달리기를 했는데 당시 운동을 잘하기로 정평이 난 심미교와 비슷하게 들어오게 되었다. 순간 다들 나를 인정해주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 오 모야.. 내가 잘하는 게 있네!'
정말 우연한 발견으로 나는 달리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운동장에서 달리고, 집에 갈 때도 달리고, 달릴수록 재미있고, 마음이 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시 육상부에 들어가 육상트랙에서 스파이크를 신고 출발하는 연습을 하며 내 삶에 목표란 것이 생겼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