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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Dec 23. 2023

나의 드라마 일지

하루 5분 설렘을 배우다



좋은 드라마는 다시 봐도 좋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뭐 볼 거 없나 찾다가 마땅히 없을 때는 봤던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한다. 분명 전에 봤을 때와 다른 게 보이는 경험이 생길 것이다. 볼 거 많은 세상에서 굳이 봤던 걸 왜 또 보냐고 묻기도 하는데 좋은 이유가 있으니까 본다. 특히, 박해영 작가님의 작품을 여러 번 봤다. 많이들 인생 드라마로 꼽는 ‘나의 아저씨’ 뿐만 아니라 ‘나의 해방일지’ ‘또, 오해영’은 최소 두 번 이상씩 본 드라마다. 드라마 속의 캐릭터들은 촌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등장인물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앞서 말한 드라마들은 꼭 보길 권해본다. 문득, 기회가 되면 드라마 이야기만 묶어서 풀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또 봐야겠네? 


최근에 다시 본 드라마는 ‘나의 해방일지’이다. 여름에 시작해서 추운 겨울에 끝나는 이 드라마를 남편과 가을부터 보기 시작했다. 참고로 남편은 티브이를 잘 안 보는 사람이어서 주말에 한 편씩 봤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 티브이를 잘 안 볼 뿐이지 추천해 주는 드라마는 보려고 노력한다. ‘나의 아저씨’를 보고선 정말 좋아했고, 이번에 ‘나의 해방일지’도 매우 좋았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 그리 와닿지 않았다. 같은 시기 방영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더 편애했다. 노희경 작가님을 정말 정말 좋아해서 마음이 많이 기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들의 블루스’ 역시 좋은 드라마인 것도 맞다. 그에 비해서 ‘나의 해방일지’는 뭐랄까, 어둡고 우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번째 보면서 깨달았다. 이 드라마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어쩌면 그런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고. ‘나의 해방일지’는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이야기, 있을법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추앙’이라는 단어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큰 언니 ‘기정’이다. 이토록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매력 ‘뿜뿜’이다. 나는 기정처럼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볼 때도 기정이에게 가장 많은 눈길이 갔다. 그다음은 둘째 아들 ‘창희’였다. 내면이 따뜻한 남자, 귀엽고 의외로 속이 깊다. 여러 번 뭉클했던 창희의 대사 때문에 이 드라마가 다시 보이기도 했다. 주인공인 막내 ‘미정’은 고구마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쟤는 왜 참아?’ 착하다 못해 답답하게 느꼈었는데 이번에  볼 땐 세상에 모든 미정이를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 나도 미정이가 될 수 있었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모습이었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기억에 남는 미정의 대사다. 하루 5분만 채워보라는 말에 마음이 일렁였다. 실제로 할만해서 따라 해봤는데 하루에 잠시라도 설레는 것을 찾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가령, 미치게 추운 날씨 때문에 아침에 깨서 움직여 봐도 좀비처럼 몸이 늘어진다. 둔한 감각이 싫어서 커피를 연달아 마셔도 매한가지. 유튜브에서 아무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튼다. 주로 아침에는 ‘카페 음악’을 검색해서 듣는데 가뜩이나 기운 없는 몸이 한없이 나른해져서 다시 플레이리스트를 아무거나 눌러본다. 흥겨운 가요가 나오던 중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음악이 나온다. ‘어? 뭐야?’ 그 순간,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이때는 음악이 나를 찾아온 듯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폴킴의 ‘있잖아’ 다음은 샤이니의 ‘방백’이었다. 들을 때마다 봄 같은 노래인데 두 곡이 이어져 나왔다. 듣고 나니 이미  5분을 넘겼다. 오늘 치 설렘을 다 채웠네. 잠깐이라도 설렘을 느낀 기억으로 하루의 기분이 달라진다.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고 따라 해보며 잠시 나의 일상도 드라마가 되어본다.


좋은 드라마에는 배움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덤덤하지만 아기자기한 내용을 담은 그런 드라마 말이다. 내 삶이 곧 드라마인 것을 느끼면 미약하게나마 위로받게 된다. 대부분 드라마의 결말이 좋듯 인생도 결국 좋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내가 내게 주는 좋은 영향은 누군가와의 대화보다 기억에 남게 된다. 인생 드라마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드라마 목록을 채울수록 나의 삶도 다채롭고 반짝반짝 빛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초의 설렘으로도 하루를 꽉 채울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어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되는 즐거움을 느껴보길 조용히 추천해 본다. 나만의 시선에서 발견하는 장면이, 또는 5분이 곧 인생 전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치 5분은 어떤 것으로 채워질지 생각만으로도 설렘 5초 지나갔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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