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를 향한 조용한 다짐
사람들의 전성기는 모두 다르다. 어떤 게 전성기인지 모를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는 건 기회가 오기를 바라지도 않는 것. 언제부턴가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된다’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집중력을 해치는 것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사람은 꼭 있다. ‘대단하다. 저 사람.’ 감탄만 하는 건 이제 그만. 이전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무너지는 실천을 단단히 잡아줄 무엇이 절실했다. 그렇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록만이 정답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껏 다이어리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옆에서 다이어리를 열심히 쓰는 남편을 보면서 여백이 남아도는 나의 다이어리를 볼 때마다 머쓱했다. ‘다음 주부터 잘 쓰자.’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되었다. (몇 해 동안 반복) ‘여백의 미’라고 둘러대기에도 한참 남아도는 페이지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결국 다이어리를 그만 쓰기로 했다.
“남편아, 이제 다이어리 안 사줘도 돼.”라고 말한 바로 다음 날, 돌연 마음이 바뀌었다.
이번부터는 잘 쓸 것 같은 믿음이 강하게 들었다.
“남편, 내년에는 다이어리 잘 쓸게요. 다시 사줘요.”
“응. 사줄게. 그리고 올해 아직 안 갔어. 12월을 채워봐.”
부탁할 땐 존댓말을 하는 내게 남편은 웃으며 곧바로 2024년 다이어리를 주문해 줬다. 배송받은 새 다이어리는 책상 위 책들과 함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꽂아두었다. 아직 겉에 씌운 비닐을 뜯지 않은 새 다이어리를 흘겨보면서 결의에 찬 다짐을 했다. 다짐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또 믿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기록이 별로 없는 휑한 페이지가 많은 2023년 다이어리를 애틋하게 쳐다봤다.
어느 해 보다 자잘한 성취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기록이 변변치 않았다. 가고 있는 2023년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마지막 날에는 SNS 피드 올리기에 분주했다. ‘진작 좀 올리지, 왜 이런 날 혼자 난리야.’ 자책하면서 해가 넘어가기 전에 올리고 싶은 사진을 추렸다. 사진을 찾다 보니 2023년을 정말 잘 보냈고 나름 꽉 채웠다는 걸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미련만 남은 2023년이 절대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아쉬움 없는 12월 31일이었다. '기록만 잘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2024년 1월 1일로 넘어가기 3시간 전에 부랴부랴 기억하고 싶은 베스트 사진들을 올렸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의미 있었던 날을 기록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그래봤자 가까스로 피드 몇 개 올린 게 전부지만.
새해가 기대되는 건 새로운 목표와 계획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성취감이 아니더라도 아기자기한 성공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알게 되어 2024년이 무척 설렌다. 남편이 선물해 준 새 다이어리 첫 장에 진심을 담아 글씨를 꾹꾹 눌러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득하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좋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5년 후에도 지금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책, ‘퓨처 셀프’ 중에서>
2023년에도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책이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환경 덕분에 안정적인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앞으로 기록만 잘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해를 넘겨서 2024년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고 현재가 되었다. 새해 첫날, 나는 읊조리며 조용조용 말해본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성기를 꿈꾸며 책상 앞에 앉아서 사부작 거리며 기록하기. 오늘부터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