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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린 Jul 17. 2020

김포 할머니

촌스러운 양말

아. 내가 경험하는 첫 죽음이 나의 할머니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주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회피를 한다. 멀리 김포에 있는 할머니가 아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여태 아이들로 보는지 당시에는 정확한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노인인데도 그냥 병원 가면 낫겠지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그도 그럴게 나는 스물 중반 이 될 때까지 죽음을 목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슬픔도 어렴풋이 짐작 만 할뿐이었다. 


으응 외국을 간다고? 유럽이요! 약 8개 나라를 돌아다닐거에요.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음.. 이탈리아요! 으응 외국? 할머니에게 대한민국 이외는 모두 외국이었고 그 수많은 외국 중에 가 본 곳은 형제가 있는 미국 밖엔 없었다. 할머니 머릿속의 외국은 온통 미국이겠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더라면 내가 읊었던 수많은 외국을 상상하는데에 보탬이 됐을까.


병명을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였다. 할머니는 위암 말기였고 자꾸만 할머니의 온기로 데워놓은 전기장판 안으로 들어오라고 이불을 치워주셨다. 어렸을 적부터 김포집에 오면 할머니는 검은 봉지에 쌓여진 양말 몇 묶음을 자개 농안에서 꺼내서 신으라고 바닥에 깔아놓으셨다. 우리는 그 촌스러운 양말이 싫었다. 어른들의 성화로 신고 다녔지만 머리가 클수록 할머니가 사온 양말은 거들떠도 보지않았다. 양말을 사러 갈 기운이 없으셨던 건지 대뜸 신고 계신 버선을 벗어서 나에게 주셨다. 아니에요! 할머니 발 시리잖아요 저 양말 신었어요~ 그래도 신어 바닥 차가우니까 그 위에 신어 나는 다른 버선 신으면 돼. 아픈 와중에도 할머니는 손주의 발이 더 중요했나보다. 그날은 겨울이었고 구석에 놓인 버선은 여름용 버선이었다. 제가 그럼 다른 버선 신을게요 지금 더워서 그래요. 장판 아래는 호박으로 된 패턴의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그 카펫 위로 할머니가 준 버선을 신고 올라갔다. 와 버선이 이렇게 예쁜 거였구나.


호박 패턴 카펫. 새것 느낌이 물씬 났다.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병간호를 하고 있는 첫째 아들인 아빠를 제외하고 대전에 있는 고모와 서울에 있는 작은 아버지, 춘천에 있는 우리 가족들은 주마다 돌아가면서 김포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명절마다 숙제처럼 갔던 김포 집엘 이제서야 삼삼오오 모인다. 갈 때마다 할머니는 몰라보게 수척해지셨다. 아빠는 예민해져갔고 피부도 점점 짙어져갔다. 할머니만큼 아빠도 힘든 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누군가의 간호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돌보는 것이 아니라 시들어 가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다. 명절에는 근처 강화에 펜션을 잡고 놀러 갔다. 여태껏 친가 친척들이 다 모여서 펜션으로 여행을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 닿는 곳 안에서는. 이렇게 모이니 다른 생각보다는 정말 무언가가 다가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만큼 밝고 즐거운 연기를 했다.


할머니가 결혼할 적 받았던 24k 폐물들은 이제는 유품이 됐다. 나는 그 금덩이들을 녹여만든 반지를 받았다. 도수가 높은 금가락지는 물렀고 자주 타원형으로 찌그러졌다. 반지에 눌린 손가락이 불편할 때면 모양이 흐트러진 반지를 꾹 눌러 폈다. 꽤 귀찮은 일이었고 그 작업을 할 때면 언젠가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습관적으로 물건에 의미 부여를 하는 버릇이 있다. 혹여 깨질까 노심초사하며 유럽에서 산 틴케이스에 보관해 뒀다.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어떤 상황과 마주하는 것과 같다. 할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을 때도, 삼일 내내 꼬박 장례를 치를 때도, 입관하기  삼베로 동여맨 할머니 뺨에 입을 맞출 때도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 7월까지도 할머니는 영원히 마을회관에서 우리를 기다릴 것만 같았다. 글을 쓰는 순간 회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됐다. 할머니는 구래리에 없고 화투짝처럼 펼쳐놓았던 촌스러운 양말을 다신 보지 못할 것이다. 목이 아릴만큼 참아왔던 눈물들이 쏟아져나왔다. 오랫동안 도망쳐왔기 때문에 아픔은 지난날들의 배가되어 돌아왔다. 비로소 슬픔과 나란히 서서 진실된 인사를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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