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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Dec 11. 2023

길냥이


1.

나는 고양이가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섭다. 접점이 없던 어린시절부터 들은 것이라고는 검은 고양이 이야기와 괴담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괴담 속의 고양이는 언제나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지. 영리함. 너무 똑똑해 징그러운 그런 영리함.


직장을 옮기고 적응이 되어 갈 무렵, 이곳에는 공원과 붙은 담벽락 쪽으로 숨어 사는 길냥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다 누군가가 챙겨준 사료를 찾아 챙기던 길냥이는 외모부터 무서웠고 나는 피해다니기 바빴다.


그리고 어느 새벽, 일주일에 한번 있는 새벽 출근길에 로드킬을 당한  녀석을 발견했다. 고양이의 사체는 끔찍했다. 새벽길의 과속 차량은 신이나 있었을테고 길냥이는 길을 잃고 두려웠겠지. 속이 메스껍고 가슴에 둔통이 은근한 압박으로 나를 괴롭혔다. 먹이 한번 나누어 주지 않았고 눈길 한번을 마주한 적 없던 고양이의 죽음에 내가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었다. 구청에서 열일하는 민원실로 전화를 하고 그 새벽에 사체는 깨끗이 치워졌다. 흔적은 남지 않았는데 왜 내 심장에는 사체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듯 구토가 이는 건지. 그리고 시간은 여전히 기억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 녀석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침에 출근했더니 적당히 겁을 내면서도 내게 알은 체를 하며 울어대는 고양이 두마리가 마치 쌍둥이 같이 쳐다보고 있다. 죽은 길냥이의 자리를 차지한 녀석들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암수 한쌍은 아마 남매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녀석들은 터줏대감의 죽음으로 이 자리를 차지했는데 그 생김새가 아주 예뻤다. 덕분에 드나드는 신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사료와 간식을 배불리 먹고 누군가가 가져다 둔 따뜻한 집도 생겼다. 녀석들의 봄날이었다.






2.

몇주째 집 나갔던 암컷이 돌아왔다. 어라? 새끼고양이를 두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얼추 건강해 질때까지 어딘가에서 숨어 키운듯 제법 자란 아기고양이들이다. 드디어 마당이 온통 고양이 차지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누구도 싫다고 하지않았고, 살려고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왔으니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귀여워 해 주시는 분들도 생겼다. 길고양이의 인생역전이다. 집고양이 같은 길냥이의 탄생이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네마리의 길냥이들은 사람 다리에 비벼대고 심지어 안기기까지 한다니 웃기는 녀석들이다. 아침 출근길, 차를 주차하고 내리면 이미 내 곁으로 다가와 아주 예쁜 목소리로 "냐아옹~냐아옹" 울어대면 나는 그게 못내 예뻐서 "가자."하며 녀석들의 사료가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냥이들은 내다리 옆에서 나란히 걷다 앞서가며 돌아보다를 반복한다. 못내 느린 내 걸음이 불만인 게다. 그렇게 냥이들과 친해졌다. 볼수록 애교가 많고 귀염떠는 녀석들이 사랑스러웠다. 이녀석들은 심지어 산옆에 있어 쥐와 벌레가 많던 이곳을 깨끗이 변화시켰고 언젠가 날아들어 새똥범벅을 시키던 비둘기 마저 처리하는 기염을 보였다. 기특한 녀석들.


일주일 전, 비실비실 마르고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추가 되었다. 한쪽다리는 약하게 절고 뛰는 속도도 너무나 느려 도망도 못가는 작고 약한 녀석. 그래서 많은 사람이 걱정하게 만드는 작은 아이였다. 나는 관리자로 마당에 돌아다니는 다섯마리가 적잖이 근심거리였다. 귀여운데 근심이니 이중고려나. 너무 약한 아기고양이는 지켜보다 도저히 안되면 데려가겠다는 분도 나왔으니 다행인건지. 내년 봄에는 녀석들 중성화 수술 계획도 세워두었는데. 자꾸 늘어나는 고양이 개체수는 당혹스럽다.



3.

저녁 미사가 끝나고 마당에 빼곡히 서있던 차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다 미쳐 걷는게 어설픈 아기고양이가 차에 치였다. 마당 한가운데에서 생을 마감한 아기고양이는 신자한분이 도와주셔서 사체를 치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만 마음이 아픈건 아니구나. 여기도 열악한 환경이구나. 사료 챙겨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구나 싶어 마음이 어수선했다.


다음날, 마당은 전날밤 사체를 치우고 물로 씻어낸 자국이 그대로다. 산 옆이라 습도가 있었던 탓에 채 마르지않은 그 자리가 자꾸만 눈에 걸린다. 수컷 고양이는 제 새끼들도 아니면서 아기 고양이들이 나타날때마다 그렇게 살뜰이 보살피더니 어제와 오늘은 아기고양이가 떠난 마지막 자리를  자꾸 맴돌며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아기고양이를 찾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녀석은 처음 그 작은 아기고양이와 내가 마주쳤을때 내 앞을 막고 아기고양이를 보호하던 녀석이다. 평소 그렇게 나와 친했는데도 말이다. 그때 나는 또 그 모습이 예뻐서 숫컷 고양이를 무척 예뻐라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근무 중.

문밖으로 보이는 마당 한복판. 바짝 마른 마당에 이제 흔적은 없는데 암수 한쌍의 고양이가 냄새를 맡다가 뺑뺑이를 돌다를 반복한다. 내 마음이 뺑뺑이를 돌다 눈이 시끈해진다.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보자. 그러자 애들아.


삶이란 게 이렇게 치열할 일인가?

짧다면 짧은 생에 너무 많은 시련이 포진하고 있다. 나는 길냥이를 보며 죽음과 삶과 새로운 탄생을 본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 애교를 떨며 사료를 얻는 그들을 본다. 인간의 삶 또한 그렇게 다를 것 없지 않겠나 하는 씁쓸한 감정이 차 오른다. 그녀석들의 짧은 몇 개월을 함께 하며 깨닫는 작은 울림에 끝내 나는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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