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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Apr 12. 2024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많은 경험의 축적과 다양한 감정의 깨달음이다. 백세시대라는 요즈음의 나는 반토막의 인생을 살았다. 보편적인 인생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단지 마음은 이미 백살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인생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생각하며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첫걸음마처럼 죽음과 맞닥드리고 나니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는 깨달음은 나를 완전히 패대기 쳐버렸다. 곤죽이 된 나는 아플 사이도 없이 새로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빠가 아프다.

철부지 둘째 딸이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식당하던 때, 누구보다 묵묵히 지켜보며 아파하던 자상한 아빠, 그를 떠 올리면 자식에 대한 사랑밖에 남지 않는 나의 아빠가 아프다. 흔들리는 걸음걸이와  떨리는 손, 하얗다 못해 백지같은 얼굴빛에 가슴이 조여든다.

혼수상태를 오가며 입퇴원을 반복하던 아빠는 기어이 이제 더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며 그냥 딱 죽었으면 좋겠다고 자꾸 되내신다. 가슴이 내려 앉는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시면 저럴까 싶지만 그래도 아직은 놓아드리고  싶지 않다.  음식 조절시키고 약을 챙기고 누워 잠든 아빠의 가슴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린 숨이 오르 내리는 모습에 안도하는 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엄마를 위로하고 아빠의 생존을 확인한다.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한다. 머릿속은 대체로 아빠생각으로 그득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좋은 남편은 모르겠지만 좋은 아빠였는데, 그랬으면 고통은 조금만.

너무 오래 끌지말고 마음 아프지만 편안하시기를,

그렇게 기도하는 이기적인 딸은 오늘도 울지 못하는 하루를 보낸다. 울면 이미 불행이 닥친듯하여 울지 않고 버틴다. 버티기 대장은 또 다시 시간을 버틴다.


'제발 도와 주세요.'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도 모른체 신의 의지에 맡기며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기를 그렇게 간절히. 간신히 숨을 내 뱉으며 죽은듯 누워있는 아빠를 본다.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은 병자에 대한 사랑의 회고이고 연민이며 고통이다. 또는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미움이다.  결국 오만가지 감정의 혼제다.


이시간의 빨리 지나기를 비는 마음과 그래도 조금쯤 더 버티기를 비는 마음이 충돌한다. 결국 기도하던 손을 거두어 들인다. 신의 뜻에 맡긴다. 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에 앉아 묵묵히 죽음을 느낀다. 집안 전체에 흐르는 어두운 우울, 이것이 죽음의 시간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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