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정 Jan 04. 2024

평탄해서 괴로운 날보다 어려워서 즐거운 날이 낫다

두 달을 걸려 모바일앱 플로워차트를 그리고, 거듭 수정을 거쳐 10군데의 홈페이지 제작사에 보냈는데 '제작할 수 없다'는 곳이 반이었고, 이천만 원이 넘는 견적을 부르는 곳이 반이었다. 


'아, 홈페이지 제작사라고 다 같은 게 아니었구나.'


를 그제야 알았다. 지금에 생각하니 당연한 것이지만 템플릿형으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회사를 소개하는 정도의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개발'을 할 수 있는 곳도 제작사마다의 역량이 달라서 구현할 수 있는 범위가 제각각이었다. 


'예산이 부족해서 원하는 기능 5개 중 2개만 넣었는데도 2천이 넘는다면 완성형까지는 1억이 훌쩍 넘겠구나. 그렇다면 시간이나 비용이나 관리 면에서나 개발자를 채용하는 게 더 낫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주를 주든, 개발자를 채용하든 관건은 내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만들 이천만 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두 달을 걸려 만든 20쪽짜리 기획서를 손에 쥐고 갑자기 돈 없는 게 서러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아마도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때문에 분한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 돈만 있었다면....'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이 없다고 돈을 못 버는 것은 아니다. 좀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여러 플랫폼을 수동으로 조합해 쓰면 된다. 임대형 홈페이지에, 구글 캘린더에, zoom, 腾讯会议, 微信,抖音,zalo를 잘 조합해서 쓰면 된다. 이 플랫폼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학생들에게 수업 알림을 보내고, 수업 링크를 보내고, 피드백을 보내고, 할인 소식을 알리고, 인보이스를 보내고 등등 내가 더 부지런하면 된다. 고민은 여기에 시간을 쓰다가는 결국 내 시간을 투입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돈의 1:1 등가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시스템으로 만들어 자동화하고,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강의에서 확장된 업무로 뻗어나가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는 데서 답답함이 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긴, 돈을 구해와야지.'


베트남 시각 새벽 3시. 홈페이지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아 벌떡 일어나 정부지원사업 사이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한답시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가장 고독한 때는 '나 먹고 사는 문제를 나만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때이다.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겨우 한 걸음 앞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무도 이제 다음 스텝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야 할지, 어디에 가서 조언을 구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 책 보고, 유튜브 보고, 틱톡 보면서 방법을 찾고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다시 돌아와서 보완하고 또 시도하면서 그렇게 618일이 지났고, 베트남에 온 지 228일이 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프리랜서'가 멋져 보였다. 회사의 타이틀 없이 본인의 이름과 개인 역량으로 세상과 맞짱 뜨는 그들이 단단해 보여 부러웠다. 이렇게 직장에서 주는 월급에 만족하며 살다가는 어느날 바보가 되지 않겠는가 하여 오히려 월급날마다 불안했다. 어떤 날은 매일이 너무 똑같고 무료해서 '왜 우리는 자살하지 않는가. 하루를 사는 명분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 날도 있었다. 막상 나오니 회사 안에서는 남과 나눠서 감당하던 온갖 세금 처리와 사무실 임대료, 콘텐츠 기획과 제작, 마케팅을 혼자서 감당해야 해서 숨이 찼다. 조직 안에서는 내가 0.5 비게 해도 남이 채워주던 것이 있었는데 나오니 내가 온전히 1을 다 채워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늘 해야 할 일이 넘쳤고, 일은 일을 불렀으나 실속이 없었다. 누가 기록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매일을 기록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일이 어느새 산으로 가고 있었다. 매일 신문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새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 흐름에 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대화 안에서 정보라고 할 만한 것을 캐치하려면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야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나오니 '살려면 해야 하는' 필수 요소가 되어버렸다. 특히나 해외에 있으니 국내뿐 아니라 세계 정세를 다룬 뉴스까지도 알고 있어야 했다. 


베트남에 온 지 200일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고, 매일이 어렵다. 하지만 무료해서 괴로웠던 예전보다 지금이 내게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음은 틀림없다. 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으므로. 

 



작가의 이전글 상표 출원을 해 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