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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철 Feb 01. 2024

경쟁사의 품격

"이곳 유학업은 꽤 잘 돌아갑니다. 이번 유학 박람회 때 일본과 한국 두 나라를 대상으로 학생 모집을 했는데, 처음 개최한 것을 고려한다면 학생도 꽤 모인 편이고요. 다만 홍콩에서 한국어 공부할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모집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몇 달 동안 홍보했는데 3명밖에 안 모였고요. 물론 저희가 홍보를 잘 못한 것이 크겠지만 홍콩에서는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곳에 원장으로 오셔서 한국어 쪽을 맡아서 해 보시지요. 수익은 합리적인 선에서 쉐어 하시고요."


"혹시 홍보를 어떤 경로로 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페이스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지금 테스트 단계이기는 한데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글로벌 버전, 틱톡 중국 버전, 샤오홍슈에 동시에 홍보 영상을 계속 내보내고 있거든요. 저와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홍콩 학생들 숫자가 적지 않은 걸 보면 홍콩에서 중고등 학생들의 수요가 꽤 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함께 다른 채널을 함께 이용하시면 어떨까 싶어요. 카드뉴스나 홍보글만 올리는 것보다 실제 수업하는 영상을 올려서 간접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효과가 큰 것 같고요. 그리고 원하시는 답변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저는 다음 달에 중국으로 갑니다. 사업자등록을 내고 팀원을 모아서 가맹을 내고 있어요. 첫 번째 가맹을 대련에 내기로 해서 다음 달부터 대련에서 온오프라인 동시에 수업을 열 계획이에요."


"대련으로 가신다니.. 저희가 한 발 늦었네요. 진즉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한국어교사 매칭 서비스를 할 거라 앞으로 한국어교사들을 많이 모집할 텐데, 그때 훌륭한 분이 홍콩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호찌민에서의 일정을 끝냈다.

약 8개월 동안 근무한 호찌민 대학의 동료 교수들과 밥을 먹고 기념 촬영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짐 정리할 시간도 부족해 새벽까지 짐을 싸고 새벽 비행기로 다낭에 왔다. 작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단 하루도 온전히 쉰 날이 없었다. 다낭 학술대회에 참석했을 때, 이렇게 살다가는 언제 과로사할 지 모르니 베트남 떠나기 전 한 번 더 다낭 바다를 보리라 다짐했었는데 해가 바뀌고 나서야 스스로와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다낭은 한국인 여행객이 워낙 많은 도시라 일부러 외곽 지역으로 숙소를 잡았다.

숙소 앞 거리
숙소 앞 거리

이곳은 한국인은커녕 베트남 사람도 많지 않은, 어촌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곳이다. 널찍한 도로에 강아지들이 발랄하게 달리고, 어르신들이 서로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흠뻑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숙소 근처 시장에서 갖가지 해물과 과일을 사왔고 베란다에 앉아 다람쥐 커피를 마시며 홍콩 어학센터와의 미팅을 복기했다.

 

숙소 근처 전통시장
숙소 근처 전통시장

(사진으로는 감이 덜하지만, 실제로 보면 생선과 새우, 조개에서 빛이 난다. 과일도 매우 신선해서 어떤 과일을 사든 실패가 없다.)


'홍콩에서 온라인으로 한국어 배우는 학생 모집이 힘들다라...'


학생이 없지 않다. 홍콩의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도 흡인력 있는 홍보를 하면서 키워드 조정을 하고, 홍보 문구를 바꾸는 등의 시도가 적었을 것이다.


홍콩 센터와의 인연은 2월이 처음이었으므로 이번 미팅은 그로부터 1년만이었다. 당시 나는 대만의 한 플랫폼에서 하루에 한두 타임씩 이제 막 온라인 한국어교육을 시작하던 터였고, 전세 사기를 당하기 전이라 세상에 대한 분통이 터지지 않은 때였다. 그저 한 달에 200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면 프리랜서로서 그래도 괜찮은 시작이 아닐까 안온한 상태였다. 당시 나를 선생으로 두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던 홍콩의 한 어르신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분이 홍콩 국제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당시 내게 홍콩 국제학교에 올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했으나 나는 이미 베트남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아쉬운대로 온라인 한국어 강사로나마 협력할 부분을 함께 하마 약속했던 것이다. 이 어르신이 은퇴를 앞두고 독자적으로 유학업을 겸한 어학센터를 만드신 듯한데 이번에는 한국어 파트 원장으로 올 수 없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전세 사기 전이었으면 고려해봤음직한 제안이었겠으나 나는 흑화해 버렸으므로 원장으로는 아쉽다. 현지에 가서 원장으로서 학원을 흥하게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재의 내게 난도가 낮다. 1년 동안 내게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사건들은 내가 박사까지 공부한 것 가지고 이쪽 업계 패러다임을 뒤집어버리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홍콩 시장만으로는 성에 안 찬다. 나 집 없다고, 돈 없다고, 한국어교육으로 밥이나 벌어 먹겠냐고, 개나 소나 요즘은 다 박사 가더라고 조롱했던 사람들한테 뭐가 집이고, 뭐가 돈이고, 내가 배운 공부 가지고 뭘 할 수 있는지 나이스하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팅에서 우리는 대학교와의 수수료 배분, 마케팅 전략, 지역별 수업 단가 등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밀도 있게 나눴고, 홍콩으로 와 달라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서로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한국어교육을 한다는 면에서는 아이템 같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아주 달라서 정보 공유에서도 부담이 크지 않았다.


하이퐁에서와의 미팅과 비교한다면 아주 예의 있고, 어떻게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함께 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컸다. 나는 진심으로 경쟁사가 많기를 바란다. 학원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글로벌하게 비즈니스 하는 경쟁사가 많기를 바란다. 보고 배울 수 있는 모델이 있어야 내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 방향을 알려 주지 않아서 지독하게 외롭고 무서운 밤이 많다. 오히려 경쟁사가 있어서 '대체 여기가 왜 잘 되는 것일까'를 밤새 분석해서 내 것에 적용하는 편이 덜 두렵고 용기가 난다. 그런 면에서 홍콩 센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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