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클래스에는 베트남 선교를 하러 온 수녀, 신부들이 많고, 필리핀, 태국, 한국 등 그 국적도 다양하다. 초급1 클래스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사역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오신 70대 수녀님과 수업을 들었는데, 선교뿐 아니라 베트남어를 향한 열정도 대단하셔서 꽤 감동을 받았었다. 이 분의 인생에 대한 철학과 경험이 궁금해 식사도 여러 번 했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과연 이 정도 성정은 되어야 성직자를 하는구나.’
싶은 경외감이 절로 들어 신부, 수녀를 향한 긍정적 이미지가 싹트는 계기가 되었다.
초급2 클래스에서는 40대 수녀와 짝꿍이 되어 앉았는데 이 분은 대한민국 청년들에 대한 걱정이 남달랐다. 수업 시간에 친인척 호칭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가족관계를 오픈하게 되었는데 수업이 끝나자 수녀가 물었다.
“그럼 남편은 중국에 있고, 본인은 베트남에 있는 거예요?”
“아뇨. 남편은 한국에 있어요. 저는 곧 중국으로 들어가고요.”
“그럼 애는요?”
“저는 애 없어요.”
“아...”
수녀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요즘 한국 청년들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일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일하기 싫어한대요. 정부에서 지원금 받아서 편하게 놀 생각하고, 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 하고 그렇대요. 그리고 지원금 받으면 해외여행 다니고...”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듣다가 그게 곧 나를 겨냥해서 한 말인 듯하여
“저 여기 대학에서 일해요. 그리고 아이 갖기가 힘들어서요. 신장이 망가졌는데 의사가 임신은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임신이 되면 낳겠지만 안 생기는데 노력하지는 말자고 남편과 얘기했어요.”
수녀는 당황한 듯 잠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가 곧
“미안해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요.”
“괜찮아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인 것 같지만 굳이 따지지는 않을게요) 오해 많이 받아요.”
곧 수업이 시작됐고, 나머지 한 시간 수업을 마친 후에 난 수녀와 가벼운 목례만 나눈 뒤 곧장 교실을 나왔다. 화가 난 것은 아닌데 어쩐지 찜찜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청년들이 청년이기 때문에 일하고, 결혼하고 애 낳아야 한다는 당위는 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안티에이징 시대에 나이를 불문하고 준비된 사람이 일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더욱이 청년이 정부지원금을 받아 생활하고, 결혼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것을 수녀가 걱정하고 혀를 차는 것은 아주 모순적인 일이다.
일전에 어느 분이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날더러 ‘이기적’이라고 일갈한 일이 있었는데, 이날부터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왜 이기적인가?’에 대하여 몇 달 동안 깊게 고민했었다. 아마 내게 그 말을 한 분보다도 그 말을 들은 내가 더 많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몇 달 고민한 결과
이 사회의 시스템은 사람을 통해 구축되고 운영되는데, 선대에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쌓은 전통과 문명과 과학 발달의 혜택을 ‘너는’ 받아놓고, 이것을 후대에 전할 ‘사람’은 ‘낳고 키우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사회 시스템을 돌릴 비용인 ‘세금을 낼 구성원’을 예비해 놓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사업을 해서 ‘나 혼자만 먹고 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사회 다른 구성원에게 월급도 주고, 나라에 세금을 내는 걸로 대신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우물에서 물 길어오지 않아도 편하게 물 마실 수 있도록, 냇가에 가서 방망이질 하며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방구석에 앉아서도 지구 반대편 소식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편리한 상품을 만들고, 미리 노동해 준 앞서간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일종의 빚 청산이자 후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데도 수녀의 말은 확실히 불편했다. 왜일까? 또 며칠 고민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