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철 Feb 14. 2024

중국 가면 한자리 보답해

중국으로 출국하기 일주일 전, 

그리고 베트남에서 귀국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베트남에서 강의하랴, 가맹점에 얹을 시스템 기획하랴 한국 상황을 너무 몰랐다.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확신한 것은 어제 공동대표와 창업보육센터에서 오래 일해서 정부지원사업에 밝다는 형의 전화통화를 듣게 되면서였다.     


“근데 공철이는 왜 정부지원사업을 빨리 신청 안 한대요? 지금 한창 창업경진대회 신청부터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K스타트업에 초기창업패키지랑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사업이랑 어서 신청하라고 하세요.”

“예. 그동안 베트남에서 강의에 뭐에 너무 바빴나 보더라고요.”

“아무튼 빨리 해야 해요. 제 몸값 비싼 거 알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까 어서 사업계획서랑 써서 나한테 보내라고 하세요.”

“예예.”

“그래서 매출 나고 하면 중국에 내가 한자리...그때 보답하면 되잖아요.”     


‘보답? 중국에서 보답? 나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얘기들이 오간 거야?’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해졌다. 공동대표가 전화를 끊자마자     


“무슨 말이야? 난 정부지원사업 신청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나도 아카데미 선생님들이 있는데 내가 왜 그 사람한테 사업계획서를 보내? 그 사람 몸값 얘기가 왜 나와? 도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중국에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중국에 무슨 자리를 보답해? 이게 다 무슨 얘기야?”     


공동대표는 머리를 긁적이며      


“지분을 달라고 하는 거 같아. 창업보육센터 들어간 거 자기 덕분이라고. 그리고 자기가 사업계획서 잘 아니까 정부지원사업 받을 수 있게 도와줄 테니 나중에 사업 잘되면 지분을 좀 달라고...”

“뭐?”     

하마터면 입 밖으로 욕지기를 뱉을 뻔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스타트업이 왜 망하는지 알아?”

“?”

“이러다가, 이런 식으로 줄 게 없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지분 약속하고, 자리 약속하고 투자 받으니 얼씨구나 좋다, 감사하다, 내가 대표입네, 사장입네, 스타트업 합네 대표병 걸려서, 아무것도 없으면서 뭐나 된 듯이 지랄하다가, 그러다가 망해.”     


공동대표는 의자에 걸터앉아 나를 쳐다봤다.      


“우리 뭐 돼? 우리 지금 뭐 했어? 뭐 돈 벌었어? 우리 급해? 빨리 뭐가 되고 싶어? 왜?”

“아니. 안 급해.”

“나는 정부지원사업 신청 안 해. 우리 팀에서 나만 한국인이야. 쓰면 결국 내가 써야 하는데 나 지금 그 정도 시간 없고, 에너지 없어. 차라리 그 에너지로 가맹점 살릴 방법을 하나라도 더 연구하는 게 나아. 정부지원사업 신청하려면 중국에서 일하면서 계속 한국 왔다갔다 해야 하고 발표해야 하는데 가맹점주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리고 창업보육센터 그거 지분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거였어? 자기 몸값 비싸다는 말을 스스로 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진짜 비싼 사람 있어? 남들이 안 알아주니까 자기 입으로 본인 비싸다고 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우리가 그 형한테 잘 보이려고 그 사람 자리 만들어 주려고 이거 시작했어? 우리 플랫폼에 들어와서 함께 일할 가맹점주한테 잘할 생각해. 나눠줄 지분이 있다면 앞으로 들어올 직원들을 생각해. 우리 플랫폼에 들어와서 공부할 학생들한테 뭘 하나라도 더 줄까 그걸 생각해. 그리고 함부로 누구한테 지분을 주네마네 약속하고 다녔다가는 나 싹 다 엎어버릴 거야.”     


아직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모바일앱 기획서를 만들어 10개 제작 업체에 보냈는데 답변을 못 받은 곳이 부지기수이고, 그나마 답변 온 곳에서는 적게는 7천 많게는 2억 정도를 불렀다. 한 업체는 ‘이 정도 앱은 매출 50-60억은 나와야 굴릴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스타트업이 무슨 이런 걸 만드냐’고 한껏 조소를 날려서 기세가 꺾인 참이었다. 베트남에서부터 오늘까지 줄곧 홈페이지 기획서를 새로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직 그럴듯한 모양새도 갖추지 못한 곳에 벌써 중국 가맹점에서 유학생이라도 나오면 빼돌리려는 업자가 꼬였고, 나도 아직 제대로 얘기 나눠보지 않은 점주를 찾아가 ‘○○ 대표는 한국어 가르칠 줄만 알지, 사업은 1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내 욕을 질펀하게 하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게다가 오늘은 지분 얘기라니.      

창업보육센터를 포함해 주변을 리셋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도둑처럼, 먼지처럼, 사람들 눈에 하찮아 보이는 존재들로 그렇게 시작하자. 우리 빈수레인데 지금 너무 요란하다.”     


나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수녀님, 이건 아니잖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