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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Feb 19. 2024

삼겹살 값

'그렇게나 좋아하는 삼겹살을 먹고 와 놓고, 나는 왜 이렇게나 우울해 하고 있는가?'


점심을 먹고 들어와 겨우 강의 하나를 마치고는 침대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다운되어버린 기분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아무래도 삼겹살 때문이다.


오늘 만나 함께 점심을 먹은 이들은 세 번 거절한 끝에 공동대표가


'내 체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만나자.'


고 해서 어거지로 나가 얼굴을 볼 정도로 탐탁지 않아 하는 인사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우리와 한 팀이 되고 싶다고 했고,

그 다음 만났을 때는 우리와 협력하고 싶다고 했고,

그리고 오늘은...


나는 손수 팔을 걷어 그네들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잘라주고, 물을 따라주는 한 시간 반 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네가 중국에 들어가 유학원을 내면 학생들 면접지도를 해 줬으면 좋겠다기에 억지로 옅은 미소를 지어보인 게 반응의 전부였다. 나는 이런 나의 상냥하지 않은 태도가 남들에게 얼마나 재수없게 보일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나의 최선이었다.


이들은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 우리 회사 이름으로 유학생 모집을 했으면서 커미션 문제를 투명하게 논의하지 않았고, 우리와 가맹을 열기로 한 예비 점주들을 찾아가 공철 대표는 사업 능력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고 다녔다. 이 외에도 한국어교육 사업을 하는 경쟁 회사 대표들을 찾아가 우리에 대해 이말저말을 하고 다닌 것을 안다. 그러나 아는 척하지 않았다.    


작년에, 이들이 우리와 한 팀이 되고 싶다고 했다는 얘길 베트남에서 듣고는 설레서 잠을 설쳤었다. 며칠을 고민해서 사업계획과 비전을 정리했고, 베트남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갔을 때는 나는 마치 미친년처럼 흥분해서 함께 성장해 갈 우리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내가 베트남에서 대학 강의에, 현지 학원 강의에, 베트남인 대상 1:1 과외들을 하면서 얼마나 시장조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아냐며, 내가 믿을 만한 리더이고, 뱉은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동안 시장조사한 것을 정리한 노트 두 권을 펼쳐보이며 온몸으로 이야기했다.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필리핀, 사우디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는 아시아 지역을 넘어 중동까지 가게 될 거라고 혼자 벅차서 떠들어댔었다. 그랬었다. 그날.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이미 그들을 우리 팀원이라고 착각하고 뜨겁게 설렜던 나는,

 '黑钱(더러운 돈)'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빠르게 식었다.

    

중국 유학생에게서 받을 학비 중에는 보이스피싱 등으로 부정하게 번 돈이 있을 수 있으니 회사 통장이 아니라 중간 통장을 거쳐 받아야 하며, 그 통장은 자기네들이 관리해서 이 회사가 계좌 정지 등을 당할 위험을 미연에 막아주겠다는 것이 그네들의 논리였다.


'아, 틀렸어.'


이들은 우리 비전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앞으로 들어올 유학생들의 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공동대표가 아무도 없는 회사보다 시작은 몇 명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여 혼자 몰래 변호사와 세무사, 회계사를 찾아가 '직원 횡령'에 대한 상담까지 받았었다.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횡령을 의심하면서 들인 팀원과 무슨 일을 같이 하겠는가, 허탈하여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스스로를 힐난했다.


'한심해. 멍청하고 미련해. 미친년, 미친년.'


그러다 곧 노트 두 권을 팔락팔락 넘겨가며 얼굴이 터질 듯 흥분해 떠들던 내가 그들 눈에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날의 내가 안쓰러워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앉아 지하철 몇 대를 그냥 보냈었다.


회사를 나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부터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일들, 들었지만 못 들은 척 하는 일들이 퍽 많아졌다. 회사에서는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해서 MZ의 전형인 것처럼 지목되던 때도 있었고, 잘못 된 것을 따져묻지 않는 것은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는 모종의 정의감 같은 것에 불타서 하극상을 벌이고 경위서를 쓴 일도 있다.


그런데 팀원에게, 거래처에게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끼어들면 안 되는 관계, 아는 척해서 꼬일 것 같은 일, 기다려야만 풀릴 오해, 내가 바보로 비쳐야만 비켜갈 함정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맹점주들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공동대표에게 부탁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듯이 가망이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해 줘. 공철이가 베트남에서 시장조사 한다 어쩐다 뛰어는 다니는데 혼자서 뭐가 되겠냐고, 한 번씩 한국 들어오면 술만 마시고 많이 불안해 하더라고 얘기해 줘. 창업보육센터에 들어갔는데 지원금 나오는 것도 없고, sns도 썩 반응이 좋지 않다고. 1년 못 버틸 것 같다고. 사업도 비전이 안 보인다고."


"왜? 잘나간다고 하고 다녀도 모자란데? 사람들이 우릴 실패자라고 비웃을 거야."


"실패자? 그런 친구들이랑 손잡다가 진짜 나락가는 거야. 정말 실패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 실패한 것처럼 해 줘. 그 친구들이 정말로 우리랑 뭐를 한다면 우린 걔들 수준만큼밖에 못 가. 黑钱이나 받는 가맹점 두 개쯤 내고 중국 어디서 발목 잡혀서 그거 수습하다가 고꾸라질거야. 나 그런 그지 같은 일들 뒤처리나 하다가 죽고 싶지 않아. 우리가 나가달라고 하면 아마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서 쟤들 나쁜 애들이라고 욕하고 다닐 테니까 망할 것 같은 냄새를 풍겨서 쟤들이 먼저 우릴 손절 치게 만들어 줘. 그럼 먼저 발 빼는 게 미안해서라도 욕은 안 하고 다닐 거야."    


그리고 공동대표가 그런 얘기들을 흘리고 다닌지 한 달쯤 지난 오늘,

이들은 우릴 진짜 손절 치려고 온 것이다. 삼겹살을 사 주면서...

(팀원이라고 인정한 적 없지만) 팀원으로써 창업보육센터 사무실을 같이 쓰면 좋겠다고 해서 보증금을 같이 냈고, 월세도 같이 부담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이들이 먼저 창업보육센터에서 나오고 싶다는 얘길 꺼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중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1년 뒤에나 갈 중국을 낼 모레 중국 들어갈 내 앞에서 꺼내며, 사무실에서 나가고 싶다고 얘길하는 이들에게 나는 한없이 침잠하는 마음으로 고기를 구워주었다. 계획한 대로 이들이 먼저 우리를 잘라낼 수 있게 만들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우울하고 또 슬펐다.


수업이 없었지만, 수업을 핑계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케이크를 하나 사다 주고 돌아섰다. 그들은 아마 내가 작별 인사쯤으로 준 것이라 짐작하였겠지만, 실은 그네들에게 삼겹살 값조차도 빚지기 싫어서 사 준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조용히 그들을 잘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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