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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철 May 03. 2024

중국 대학교 면접을 봤다. 깊은 빡침이 하늘을 찌른다.

중국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맘이 급하다고 여행 비자로 활동을 시작했다가는 자칫 5년 추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도 학원 업계는 경쟁이 심하고 뒤에서 찌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잘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타깃이 되는 것은 강사들의 비자 자격과 학원의 법적 지위가 될 것이었다. 한국인 원어민 강사가 매우 적은 이 도시에서(코로나19 기간에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떠났다) 내가 전면에 나서서 학생을 모집하고 각종 행사를 진행하려면 반드시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야만 했다. 이곳은 내가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나갈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외국인 신분일 경우는 그 누가 언질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서 직영점 형태가 아니라 중국인을 사장으로 두는 가맹점 형태를 취해 중국에 들어오는 것이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우리 회사의 중국 지점에서 비즈니스 비자를 신청하는 한편 (중국은 최근 간첩법이 엄격해져서 소규모 기업에게 외국인 취업 비자를 잘 주지 않는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비즈니스 비자를 취득할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 대학교에 지원하였다.


 베트남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는 일반 대학 교수는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강의하고 성적 처리하는 것만도 빡센데, 학기마다 학생들 장학금 신청서를 검토해 줘야 하고, 한국 기관들에 보내는 각종 제안서도 검토해야 한다. 가끔 학교와 소통할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한국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밥 먹을 자리도 만들어서 나가야 하고, 학과 내 행사도 참석해 학부장한테 눈도장도 찍어야 한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써야 부분은 학기마다 국제학술대회에 논문을 내고 발표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대학이나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구 실적 점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국제학술대회에 논문을 내서 통과해 발표하거나 학회지에 투고해 등재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개 모두 그냥 끄적거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래 고민해야 하고, 논리를 갖춰야 하며, 심사위원들이 수긍할 만한 주장과 근거를 담아야 한다. 학기마다 이걸 통과하려고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고, 호찌민 새벽 골목을 걸었는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이런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살려야 할 판에 대학 교수직 유지하겠다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 뻔했다.

 중국의 4년제가 아니라 3년제 직업학교를 선택해 지원한 이유였다. 이 대학교에 지원은 두 달 전에 했었고 베트남에 있을 때 온라인으로 1차와 2차 면접을 통과한 뒤였다. 1차 면접은 시강이었다. 중국어로 15분 정도 시강을 하고, 역시 중국어로 임원들의 각종 질문에 질의응답을 하면 되었다. 한 달쯤 지나서야 총장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예상 문제를 뽑아 훑어보고 학교에 갔다.      


이제부터는 좀 기막힌 이야기.   

  

통지받은 면접 시간은 오전 9시였다. 초행길이라 택시를 타고 갔는데 무려 55분이나 걸렸다.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어 시간이 좀 걸리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가는 길이 꼬부랑길로 멀미를 심하게 해 체감은 두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이때부터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해도 여길 한 주에 두 번 이상 왕복할 자신이 없었다.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8시 25분이었는데, 어느 건물로 오라는 안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 9시가 다 되어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식당 옆 건물 제일 꼭대기층으로 안내해 주었다. 면접 시간이 9시라고 했는데 10시가 되어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이건 나뿐 아니라 내국인 트랙으로 2차 면접까지를 통과한 다른 중국인 지원자 2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얘기를 들어보니 우린 각기 다른 전형에 잠정 합격한 지원자들이었다. 한국어학과 학부 1명, 대학원 1명, 외국인 1명의 교수를 뽑는데 각 트랙에서 최종 1명씩을 선발해 오늘 총장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다. 오늘 총장 면접에서 눈에 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합격할 것이었다.      


11시가 되어도 면접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 면접을 위해 싱가폴, 말레이시아 학생들 상담도 미뤄두고 왔는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1시 반이 넘어가자


‘총장 얼굴이나 보자’


하는 심정이 되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담당자는 미안하다며 점심을 먹고 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기가 찬 심정으로 점심을 먹고 12시 반이 넘어서야 면접에 들어갔다.

면접실에 들어가 총장 앞으로 걸어가니, 총장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이력서만 넘기고 있었다. 최소한 사과 정도는 하고 시작할 줄 알았는데      


“이름이 뭐예요?”


가 첫 질문이었다. 속으로 심호흡을 세 번 했다. ‘사람을 네 시간을 기다리게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먼저가 아니냐’고 곧 따져 버릴 것 같은 내 입술을 묶어두기 위한 깊은 한숨이었다.      


“당신은 태국, 베트남, 중국을 다니면서 일했는데, 나라를 이곳저곳 너무 옮겨 다녔어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아마 한곳에 정착해서 쭉 일하지 않고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우리 학교에 들어와서도 금방 그만두고 떠날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를 우려한 질문일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한 경력을 봐 주십시오. 사전 편찬 기관에서 8년을 일했습니다. 국외에서 짧게 일한 이유는 비자 연장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계속 일하기를 원했고, 학교 측에서도 제가 계속 일하기를 원했지만 비자 연장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해외에서는 대기업이나 국가 기관이 아니면 비자 연장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학생 비자나 거주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지 정식 취업 비자를 가지고 일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저도 같은 이유로 비자 연장이 어려워 길게 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박사 수료라고 써 있는데 수료가 뭡니까?”

“박사 과정에서의 수업을 다 듣고, 논문 학기 중에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박사 따기 쉽지 않나?”


답하려다 말고 순간 깊은 빡침이 올라와 되물었다.


“한국에서 박사 따기 쉽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하하하”     

총장은 당황한 듯 크게 웃으며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었다.      

“다른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잘하는 게 뭡니까?”

“잘하는 거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뭘 잘 가르칠 수 있냐는 거죠.”

“저는 TOPIK(외국인 대상 한국어능력시험)에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르친 학생들의 합격률이 높습니다. 급수도 4급부터 6급까지 다양하고요.(1급부터 6급까지가 있고 6급이 가장 높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제가 원어민이기 때문에 회화 측면에서 우세점이 있을 겁니다. 중국인 한국어 강사들은 제공할 수 없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 정서까지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TOPIK과 회화 강의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이 있습니다.”

“얼마를 받고 싶습니까?”

“8,000원입니다(한화 약 151만 원).”

“8,000원? 그건 어디서 나온 금액입니까?”

“채용 공고 때 8천 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석사 학위가 있으면 업계에서는 보통 8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압니다.”     


총장은 대각선으로 앉아 있던 임원들과 임금 관련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더니


“그건 인사부랑 상의하시죠. 알겠습니다.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면접 보는 내내 불쾌했다. 전체 면접 시간은 8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질문마다에서 공격성과 깔보는 느낌이 있어서 나 또한 답변마다에서 치받고 싶은 것을 참느라 혼났다. 앞으로 어떤 한국인이 이곳에 지원할지 모르므로 그를 위해 한국인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돌아와서는 한바탕 난리를 치고 왔어야 한국어 강사를 우습게 안 봤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중간관리자가 따라나와 설명하길     


“한 시간 강의 시급은 35원입니다. 참고해 주세요.”

“35원이요?”     

인민폐 35원이면 한국 돈 7,000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임금 낮기로 소문난 베트남 대학에서 받았던 시급이 15달러이다. 무려 13,000원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학교까지의 거리며, 면접을 위해 4시간 기다린 것까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됐다됐어. 한 달이 걸리든, 반년이 걸리든 몇 번 거절을 당하더라도 회사 이름으로 비자를 받고 말지 내참.’     


혀를 차고 돌아와 이틀이 지난 후에 합격 통지와 함께 조건이 적힌 문자를 받았는데 내용이 볼 만했다.   

  

“총장님께서 당신이 제시한 8,000원을 수락하셨습니다. 다만, 행정 업무를 해 주셔야 하고, TOPIK(한국어능력시험) 시험 관련 일을 맡아 주셔야 합니다. 또한 한국어센터를 담당해 주십시오.”      


저 조건을 보면 일이 단순하게 3개인 것 같지만, 저 카테고리 하나하나 너머에는 엄청난 양의 행정적 처리와 일과 행사들이 널려 있다. 행정 업무라 함은 학생들의 유학 업무를 말하는 것으로 저 학교에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 될 나를 활용해 한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의 서류 처리를 하려는 걸 거였다. TOPIK 시험 관련 일은 해당 학교에서 시험을 주관하고 서류 접수비 등을 받을 권한을 따오라는 것이다. 감독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시험지를 수령하고, 시험을 진행하고 한국 관련 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이 일 하나만으로도 사람 두 명은 뽑아야 한다. 한국어센터는 대학 내 한국어학과 외에도 별도의 학원을 하나 열겠다는 의미이다. 대학으로 끌어오기 어려운 어린이 학습자나 성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국어 학원을 열어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한 명이 온전히 이 일을 맡아 해도 벅차다. 그러니까 8,000원을 주고 대학 강의, 유학 업무, 한국어시험, 한국어학원까지 4-5명 몫을 하라는 것인데 과하다.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 스케일을 굴릴 능력과 역량이 되면 자기 사업을 하지 굳이 이 돈을 받고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아주 정중하게 한국에서 더 배우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담당자 번호를 삭제해 버렸다.   

   

내가 반드시 우리 회사 이름으로 비자를 받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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