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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Mar 04. 2021

뇌가 예뻐지는 법


작년 여름,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모집한 온라인마케터 과정을 수강했었다. 두 달 과정 중 한 달은 쇼핑몰을 만드는데 필요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웠다. 이제와 얘기지만 나는 그 과정에 포토샵과 일러스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쥐꼬리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미리 알았다면 신청하지 않았겠지. 코로나로 인해 과정 등록 일정도 꽤 빠듯했다. 과정이 시작되고 곧, 나는 어떤 커리큘럼인지 확인해보지 않은 나를 탓하고 말았다.


내 나이면 과정에서 꽤 올드한 축에 속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 나는 막내에서 두 번째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취업을 원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두고 맞벌이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비하면 훠얼씬 일찍 끝나는 초등학교.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초등학교 저학년 동안 등하원을 같이 하고 고학년이 되면 집에 혼자 두어도 그리 걱정이 많이 될 나이는 아니니 다들 취업 전선에 나서시는 것일 터.


암튼 생각지 못한 포토샵과 일러스트지만 열심히 배웠다. 나름 잘한다고 자부하면서 배웠는데 20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뭘 해도 빠릿빠릿한 20대, 그리고 뭘 배워도 다시 되물어야 하는 40대. 그리고 그 중간 나 같은 30대. 미리 배워둘걸,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격증을 딸걸. 되돌릴 수 없는 후회만 가득하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게 공부가 아닐까? 갑자기 예전에 유명했던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가 생각난다.(그분은 뭐하고 계실까?) 하지만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는 이유는, 공부가 제일 쉬워서가 아니라 평생 할 수 있는 것이 공부 말고는 없어서이지 않을까. 서점에 가면 30대도 50대도 70대도 공부하라는 책이 잔뜩이다. 그래그래. 공부하마.



남편이 귀농을 하고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 둘째가 돌이 지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자 했던 계획은 코로나 앞에 그리고 두 자릿수가 넘는 대기번호 앞에 좌절되고 말았다. 아- 그렇다면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역시 공부뿐이다. 육아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 닥치는 대로 도전하고 시도하고 배웠다. 글쓰기를 시작했고, 브런치를 시작했고, 블로그로 수익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고, 초짜지만 오픈 채팅방도 운영해봤다. 그리고 논술지도사, 독서지도사까지. 어찌 보면 뭘 하는 중인지 제대로 알고 있나 싶으만큼 많은 것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24시간. 그중에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큼일까. 일단 새벽에 일어나기로 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이 있다. 전업주부 육아맘에게 새벽이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정한 기상시간은 5시. 저녁 9시쯤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같이 잠든다. 그리고 5시 알람이 울리면 기상.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며칠 혼자만의 새벽시간을 보냈다. 글을 쓰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책을 읽고.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미라클 모닝이 생각보다 쉬웠다. 물론 새벽에 엄마가 옆자리에 없다는 걸 아이가 알기 전까지 말이다.



어김없이 기상 5시. 팬트리를 방으로 바꾼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방에서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숨을 죽이고 방문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방문 앞에서 소리가 끊긴다. 문을 살포시 미는데 열리지 않는다. 아- 아이가 애착 이불을 둘둘 싸매고 방문 밖에 누워있다. 엄마는 보고 싶지만, 방해는 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 누워있는 아이를 꼭 안아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아이 옆에 누웠다. “왜 일어났어?” 물으니 “엄마가 없었어. 무서웠어.” 한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중얼거린다.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엄마가 꼭 안아줄게. 옆에 있어줄게.’


하루만 그러려니 했는데 그날을 기점으로 매일 새벽,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30분 후. 아이가 계속 잠에서 깬다. 아이에게 잠은 중요한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아이의 잠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러기를 며칠. 아이와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자다가 자꾸 밖으로 나가?”

“엄마가 밖으로 나갔어?”

“응. 엄마가 자꾸 없어.”

“엄마가 아침에 공부하느라 일찍 일어나서 그래.”

“자꾸 밖에 가지 마.”

“엄마는 공부해야 하는 걸.”

“공부 안 해도 돼.”

“공부 안 해서 머리가 나빠지면 어떻게 해?”

“음........”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엄마! 사탕을 먹으면 뇌가 예뻐져. 그러니까 공부하지 마. 사탕 먹어.”


아이의 대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탕을 먹고 싶어서 그런 걸까. 뇌라는 단어는 어디서 배운 걸까. 어떻게든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탕 먹으면 뇌가 예뻐져?”

“응. 그러니까 엄마 많이 먹어.”



그래. 네 말대로 엄마가 사탕 많이 먹을게. 그리고 뇌가 예뻐져서 잠든 너의 옆에 꼭 붙어 있을게. 그게 너의 바람이라면 엄마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네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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