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자비에 르그랑, 2017)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가정 폭력과 그 이후의 문제를 잘 재현하고 있다. 앙투안은 가족, 특히 부인인 미리암을 소유물로 여기고 심사가 뒤틀리면 언제든 그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이때 영화는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으로 인한 ‘공포’에 집중한다.
공포는 소리가 기억하는 감각과 한계 체험을 통해 환기된다. 미리암이 총을 들고 찾아온 앙투안의 화난 목소리를 피해 침대에 눕는 장면은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롱 테이크로 진행된다. 미리암과 아들 줄리앙은 서로를 껴안은 채 그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부로 침범하는 소리에 긴장하면서도 지금껏 우리의 경험이 도달하지 않았던 체험 자체를 보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어둠과 화면 밖 영역에 인물들을 위치시켜 우리의 시각을 끊임없이 이중화한다. 이때 느끼는 불편함은 직접적인 폭력의 전시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깨닫는 과정으로부터 기인한다.
영화에는 우리처럼 무력화된 인물, 조세핀이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 이후 사유 과정에서 무력화 되는 우리와는 달리 조세핀은 다른 피해 당사자들이 서로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며 무력화 된다. 조세핀과 줄리앙이 새 집을 둘러보는 장면에서 두 사람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 차이는 분명하다. 재판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조세핀은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고 줄리앙은 오른쪽 전경으로 걸어 나온다. 이로써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줄리앙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조세핀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파티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조세핀은 앙투안에게서 연락을 받고 파티장을 벗어나는 미리암을 본 이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불안한 마음에도 축하 무대에 손발이 묶여 노래만 부르던 조세핀은 별 탈 없이 돌아온 미리암을 보고 나서야 동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조세핀은 왜 화면 앞으로 나설 수도, 무대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을까? 복수의 이미지들의 관계, 특히 앙투안과 조세핀의 이미지 연결은 이 질문에 해답을 제시한다. 재판이 끝난 후 미리암을 바라보는 앙투안의 모습 뒤로 조세핀과 그의 연인 사무엘이 키스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조세핀과 사무엘의 키스가 폭력의 시초라는 미리암의 진술을 상기했을 때, 이는 앙투안의 시점 숏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장면은 한 번 더 등장한다. 조세핀이 학교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기로 가임 여부를 확인할 때다. 미리암의 새 연락처와 거주지를 알아내려는 앙투안과 그에 대항하는 줄리앙이 해당 장면 전후로 삽입된다. 다시 말해 폭력 해방을 위해 노력 중인 줄리앙과 달리 조세핀은 영화 대의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로 그려진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조세핀에게 발전 방향을 위해 복무하도록 강요하고 이를 어느 정도 은폐한다면 우리는 성찰성의 한계를 한 번 더 넘어서야 한다.
[해당 글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신문 217호에 먼저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