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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수 Oct 30. 2020

사는 사람의 일상과 이야기를 담다

한 개인의 소소한 공간 연대기_06화


현관 - 어느 정도 힘을 뺀 웃음을 만날 수 있는 곳 

현관에 있던 신발장도 그대로 쓰기로 했는 데 천정까지 막고 선 신발장을 올려다보니 숨이 막혔다. 이전 집 신발장은 어른 허리 정도 높이로 그 위에 가족사진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올려놓았다. 집의 첫인상인 현관에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 


스토리가 별 것인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어느 정도 힘을 뺀 웃음, 그래서 밖에서 찾을 수 없었던 자연스러움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현관이었다. 


있던 신발장을 철거하고 내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신발장을 다시 짜면 됐지만, 문제는 예산, 비용이 추가되었지만 하기로 했다. 신발장의 선을 넘자 이번에는 현관 타일이 눈에 거슬렸다. '현관 타일은 포기하자'라고 생각했으나 밤새 마음에 걸렸다. 그래, 쓰는 김에 더 쓰자. 


새시 – 집의 전체 분위기를 바꾸다  

싱크대와 화장실 욕조 등의 철거를 끝낸 뒤 곰팡이가 쓴 뒤 베란다 방수와 단열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집이 어두컴컴해 보였다. 그 이유를 찾으니 낡은 새시 때문이었다. 1997년 준공된, 20년이 넘은 아파트이다 보니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스테인리스 소재 새시가 그 이유였다. 온 신경이 새시에 집중됐다. 앞 베란다, 뒤 베란다 전체 새시 교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내부 인테리어 완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낡은 새시는 더욱 대비되어 강조될 터였다. 


‘아 어쩌란 말인가.’ 


산 넘어 산, 물 넘어 물이었다. 남편한테 조언을 구하니 “할 때 하자. 나중에 공사 끝나고 보면 분명 후회할 거야, 그리고 단열을 생각해서라도 새시는 교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 맞는 말이었다. 비용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교체.  


앞 베란다와 뒤 베란다 현관 옆에 있는 작은 방까지 새시를 바꾸니 집이 환해졌다. 새시 문을 닫으면 저절로 문이 잠겼다. 이전 집에서는 어머니가 새시 문을 닫고 일일이 손으로 문고리를 잠갔는 데 이제는 그 수고를 덜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거실 천정 – 갈팡질팡하다 톡톡히 수업료를 내다 

인테리어 공사 기간 내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옳은 결정인가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결정을 한 다음에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테리어를 맡은 사장님께  


"잠깐만요, 그것 오늘 꼭 결정해야 돼요?" 
"내일 아침 의견 드리면 안 될까요?" 
"아니 아니, 그것 말고요, 죄송하지만 그 전 정한 것으로 갈게요." 등등 


확신이 담보되지 않은 결정을 수도 없이 해야 했다. 

 

새시가 들어오고 나서 천정을 보니 다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내 실수였다. 수리 첫날 진행된 철거 작업 목록에 천정 조명 철거를 넣지 않은 것이었다. 우물식 천정 스타일로 가운데 백열등 조명 3개가 전체 천정의 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집을 둘러볼 때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사 중 떼어내면 되겠지'라고 간단하게만 생각했다. 리모델링이 처음이다 보니 일의 진행 순서, 확실한 의사 결정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었다. 물론 공사 중에도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결정을 번복하거나 작업이 추가될 때마다 비용이 추가됨을 생각하지 못했다.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어도 천정 조명만은 참을 수 없었다. 나의 더딘 판단으로 철거 비용이 추가되어 속은 쓰렸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테리어 사장님께 말했다. 


“저 조명 다 떼어내고, 천정 단 없이 일자로 만들어 주세요.” 


한 번에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는 데 리모델링이 처음이다 보니 수업료를 톡톡히 낸 셈이었다. 

 

천정을 일자로 만들고 매립식 등을 좌우 3개씩 넣었다. 매립등을 선택한 이유는 깔끔한 간접 조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조명이 실내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전체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조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기에 일단은 매립등을 선택했다. 매립등 위치를 정한 다음 벽을 뚫어서 미리 전선을 이어 났다. 천정 조명을 떼어내니 그제야 앓던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했다. 






공사 현장의 먼지를 마시며 베란다 구석에 의자 하나를 놓고 하는 일도 없이 앉아 있다가 때가 되면 간식을 사서 날랐다.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의사 결정을 해야 할 일이 생겼고, 그때마다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날그날 하루치의 공사가 끝나고 모두가 빠져나간 집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내일 또 만나'라는 인사를 건네며 집을 나왔다. 



갈팡질팡하다 조명 철거가 추가되었다. 리모델링 수업료를 톡톡히 낸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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