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소소한 공간 연대기_07화
욕실-타일을 사러 을지로로 출근하다
아침에는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점심에는 을지로로 나갔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고를 수 있는 타일과 세면대, 변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디자인 감이 느껴지는 타일과 세면대, 변기를 찾아 을지로를 둘러보았지만 제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을지로에 세 번째 나간 날 마음에 드는 세면대를 발견했다. 가격도 적당했다. 일단 찜해 놓고 다음날은 욕조, 욕실과 부엌 타일을 골랐다. 세면대와 타일을 처음 사다 보니 뭘 물어보고, 어떻게 비교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디자인과 가격 등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같은 값이면 욕실은 쾌적하고 디자인 감이 확 느껴지도록 꾸미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타일을 사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타일을 고르고 업체 전화번호를 인테리어 업체에 주면 인테리어 업체에서 발주하는 스타일로 프로세스를 정리했다. 막상 선택권이 나에게 넘어오니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을지로로 논현동으로 타일과 욕실 전문 매장을 돌면서 견적을 뽑아보니 예산을 훌쩍 넘었다. 욕실 두 개를 수리하려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다리와 마음이 지칠 무렵 을지로에서 마음에 드는 욕실 샘플을 발견했다. 타일 크기도 적당했고, 색깔은 물론 디자인 감각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저 스타일로 하자.’
어머니 방 욕실은 화이트에 핑크, 거실 욕실은 화이트에 그린으로 정하고 타일을 주문했다. 타일 공사가 끝나갈 무렵 욕실에 들어갈 소품과 부엌 싱크대 수전을 사러 또 을지로로 나갔다. 욕실은 채우기보다는 비우기로 했다. 거실 욕실은 심플하게 거울과 수건걸이, 해바라기 샤워기만 설치했다. 욕실장은 생략했다. 아무것도 없는 타일 벽을 그대로 살리고 싶어 수건걸이도 문 옆에 달지 않고 변기 위에 설치했다. 기존에 있던 욕조를 철거하고 어머니를 고려해 낮은 이동식 욕조를 주문했다. 꼭 필요한 것만 놓은 심플한 욕실, 샤워할 때 바닥에 물이 튀지만 샤워 커튼도 달지 않았다.
거실 욕실이 디자인에 포인트를 두었다면 어머니 방 욕실은 실용성을 고려했다. 수납장을 달고 세면대와 해바라기 샤워기, 수전, 휴지걸이는 거실 욕실과 통일했다. 마지막으로 샤워부스까지 다니 두 개의 욕실은 더 이상 손볼 곳이 없었다.
신발장은 화이트에 골드 버튼으로 포인트를 주고 현관 타일은 벌집 모양의 헥사곤 스타일로 정했다. 타일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부엌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이 들어왔다. 집인지, 공사장인지 알 수조차 없었던 거실과 부엌이 서서히 정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페인트와 도배. 천정은 화이트로 거실과 부엌, 방 3개 벽은 흰색에 가까운 옅은 그레이로, 현관 옆 작은 방 벽만 산뜻한 민트 컬러로 정했다. 길지 않은 2주 동안의 공사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이사. 이사 전날 어머니는 기장 이모집에서 올라왔고, 한 달 동안 이삿짐센터에 맡겼던 짐은 그다음 날 새집으로 들어왔다.
리모델링은 해보지도 않았고, 그저 남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어쨌든 내 손으로 고른 컬러와 자재, 스타일로 집을 바꾸니 마음이 뿌듯했다. 처음에는 너무 큰집 아니냐며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던 어머니도 완전히 바뀐 집을 보고 좋아했다.
거실-책상은 샀는 데 책꽂이는?
책상은 친구에게 추천받은 모델을 매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다음 결정했다. 책상만큼은 비교도 하지 않았고, 가성비도 따지지 않았다. 글을 쓰고 기획을 하는 사람에게 책상은 무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길이는 2미터 10센티, 확장형을 선택하면 3미터까지 가능했다. 일단은 2미터 10센티로만 주문했다. 의자는 블랙 컬러의 동일한 디자인으로 10개를 주문했다. 거실에 6개, 식탁에 4개를 놓고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옮기면서 쓸 생각이었다.
문제는 책꽂이. 원래는 어머니 집에 있던 5개의 책꽂이를 거실 한쪽 면에 배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5개가 들어가기에는 사이즈가 모자랐고, 4개는 부자연스러웠고, 3개가 들어가면 벽면이 많이 남았다. 또 하나 책꽂이를 산 시기가 다르다 보니 디자인과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다양한 책꽂이를 봤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선뜻 고르기에는 사이즈도 맞지 않았고 너무 중후하거나 너무 가볍거나 우리 집 분위기를 살려줄 책꽂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다른 곳은 몰라도 거실만큼은 ‘와~~’ 하는 소리를 들을 만큼 힘을 주고 싶었다. 어머니가 20대부터 간직해 온 책들을 맘껏 펼쳐 놓고 싶었고, 큰 책상에서 차도 마시고 글도 쓰고 작업도 하고 싶었다.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꿈꿔온 거실을 실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