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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ldmental Nov 19. 2023

하자며, 장난이었어? 해야지!

뜨거웠던 그 날들,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삶을 시작하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테지만, 내게는 특별했던 그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어디로 흐를지 몰랐던 그 시절 내 삶의 방향이 당시의 동아리 경험으로 인해 결정된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흐르기 시작한 내 세월의 강물 위에서 작은 내 삶의 조각배를 운전하는 방식까지도, 돌이켜 보면 그때의 하루 하루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무렵은 세상 모든 것이 총천연색으로 빛났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의 새로운 생활 속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 다소 방황하는 어리숙한 녀석이었다. 길었던 입시에서 해방되며 들이닥친 자유가, 내게는 그리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어서 내 길을 찾고 싶었고, 주변에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놀랍게도 똘똘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자기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열정이 끓어 뭐든 다 하고싶어 하면서도, 어리숙하게도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 방황을 적극적으로, 가열차게 하겠다는 많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학과 내 학회의 대표도 맡아보고, 고교시절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한 경험에서 음악 장르를 180도 바꾸어 아카펠라 그룹의 테너 파트이자 리드 싱어를 맡기도 했다. 제대로 된 세상 경험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도 뜨거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며 해본 적 없는 일들에 어설프게 부딪치는 대학교 1학년 남학생처럼 대책없고 불완전한 존재도 없을 텐데, 내 주변엔 다행히도 그런 나를 좋아해주는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어 주어서, 그렇게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대부분 앞장서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감사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해본 적 없는 일들에 어설프게 부딪치는 대학교 1학년 남학생처럼
대책없고 불완전한 존재도 없을 텐데


그러한 감사한 시간 속에서, 오늘 이야기하려는 나의 특별한 동아리 경험이 시작되었다. 나의 신입생 시절을 지켜봐 온 친한 선배가, 토론 동아리 설립을 위한 초기 멤버로 내게 설립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당시 우리의 친분과 더불어, 나의 성격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려는 편이었기 때문에, 선배는 나를 조금만 구슬리면 흔쾌히 승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내 삶에 큰 영향을 줄지를 느꼈던 것인지, 재고 삼고를 거쳐 전에 없이 신중하게 선배의 애를 한껏 태우며 거의 2주 동안 고민한 끝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한번 하면 제대로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영입을 제안한 선배를 오랜시간 애태우긴 했지만, 하나의 작은 모임의 탄생을 만들어가는 구성원이 되어 달라는 강한 러브콜을 받는 경험은 내겐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고,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선배에게 너무 감사했다.


"한번 하면 제대로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의 토론 동아리 경험이 특별했던 것은 설립부터 함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시절의 나 자신을 다시 있기 어려울 정도로 오롯이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은 스스로를 오롯이 퍼부었을 때, 그 순간들을 최고의 경험으로 얻어가게 마련이다. 내가 가졌던 끓어오르는 열정이 집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찾았을 때, 그동안 방황과 고민을 통해 응축되었던 에너지까지 강하게 터져나오며 더욱 나 자신을 던져 최선을 다해 활동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토론 동아리 활동의 일환인 크고 작은 대회 출전 뿐 아니라, 집을 나와 용돈을 받지 않고 직접 일해 돈을 벌며 독립해 사는 등, 스스로를 증명하고 확장하기 위한 일들을 위해 1년간 휴학까지 할 정도로 강한 자기발전의 동력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은 스스로를 오롯이 퍼부었을 때,
그 순간들을 최고의 경험으로 얻어가게 마련이다.


그러한 열정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어 가던 내 삶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 장면을 떠올려 짧게 요약한 것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자, 당시 내가 토론 동아리를 함께 설립한 초기 멤버 친구들에게 던졌던 말, "하자며, 장난이었어? 해야지!" 이다.


이런 말을 한 배경에는 동아리 설립 초기 우리 멤버라고 해 봐야 겨우 5명 밖에 되지 않던 시기, 가뜩이나 적은 인원에서 그 중에서 두명이나 개인 사정으로 모임을 빠지게 된 공교로운 날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본인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30분이나 늦게 모임에 합류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우리 세 사람은 예약해둔 강의실에 모이기로 했는데, 내가 도착했을 무렵 강의실에 먼저 도착한 두사람이 이미 학교 앞 골목에서 맥주 한잔 하러 가기로 결정하고 있었다. 오늘은 토론 활동을 제대로 하기에는 텄고, 궁색한 인원으로 동아리 활동을 채우기보다는 향후 멤버 충원을 위한 궁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오늘은 인원 때문에 김도 샜고 어려울 것 같으니까 한잔 하러 가자!" 라고 말하는 선배와 친구에게 피식 웃으며, "하자며, 장난이었어? 해야지!" 라고 우겨서, 기어코 세명이서 토론을 하고야 말았다. 물론 당시의 우리에게 하룻저녁이라는 시간은 토론을 마친 뒤에 학교 앞 골목에서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멤버 충원을 위한 궁리까지 하고도 남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날 이 결정과 이 순간은 그냥 고집스레 토론을 했던 작은 헤프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와 우리 동아리 창립 멤버들에겐 잊지못할 기억이 되었다. 어떻게 하루를 채울 것인지에 대한 나와의 약속, 함께한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날이었고, 우리가 함께하고자 모인 주제가 우리에게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활동이어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자 새롭게 합류하여 모일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긴 뜻깊은 날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 동아리는 내가 졸업할 무렵 교내 핵심 중앙동아리로 자리매김했고, 지금까지 후배들이 열심히 활동해 준 덕에, 누적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거쳐간 영향력있는 그룹이 되었다.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시작된 태도와 깨달음들이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정말 깊이 자리잡고 있어 이따금 새롭게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떠오르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진심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한번 결정하고 나면 주저없이 온몸으로 부딪치는 것, 그러한 태도가 내 마음 속에 여러차례 길이 나며, 계속해서 내 성품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된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어떤 좋은 일을 하고자 마음먹었다가, 어려움을 생각하며 다시 고민이 불쑥 고개를 들 때면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하자며, 장난이었어? 해야지!" 


삶의 뜨거운 날들을 거치며,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으로, 한번 내세운 뜻에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과 같이 삶의 강물 위에서 가열차게 두려움 없이 배를 몰아볼 수 있는 시간을 또 한번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내 삶에 다시 다가오기를 열망해 본다.


그리고, 아마 그 기회는 바로 지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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