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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필 Sep 04. 2022

길우 2


길우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었다.

그날 나는 밤새 길우를 마주 보고 누워 길우 등을 쓰다듬으며 목 언저리에 코를 묻고 있었다. 길우 냄새와 촉감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길우가 떠나고 매일 나는 길우가 없는 길우 꿈을 꾼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길우인지 알 수 없는 길우 꿈을 꾼다.



길우와 연이 닿은 건 저 사진 때문이다. 출퇴근길에 몇 번 보았던 아픈 고양이가 신경이 쓰여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내 시선은 항상 고양이를 찾았지만,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단톡방에서 저 사진이 올라왔다. 내내 신경이 쓰이던 그 고양이가 병이 더 깊어진 모습을 하고 둥글게 몸을 말고 사진 속에 있었다.


저 사진을 보고 잠든 탓일까? 꿈을 꾸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 한편에 어둠보다 더 짙은 동그라미 하나가 놓여있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짙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 동그라미가 내가 본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가진 아픔이 짙어서 저렇게 온몸이 짙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잠에서 깬 나는 고양이의 아픔을 덜어주겠다고 결단했다. 다시 그 길에 갔더니, 마치 고양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몸을 말고 누워있었다. 그 사이 더 기운이 없어졌는지 목이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길우와 인연이 닿았다.




그런데 길우가 떠나고 꿈에 매일 검은 동그라미가 나온다. 길우와 함께하는 1년 10개월 동안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검은 동그라미가 어떤 날은 하늘에서 누워있는 나를 향해 떨어지고, 또 어떤 날은 미끄러지듯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온다. 늘 검은 동그라미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놀라서 잠이 깬다. 꿈에서 깬 나는 그 검은 동그라미가 길우였는데, 내가 잘 받아주지 못해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서럽다.


놀라지 않고 잘 받아 줬다면 검은 동그라미가 내가 사랑하는 길우 모습으로 변했을까? 내게 닿기 직전에 내가 깨어나 버려서 길우가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길우는 왜 아직도 검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아픈 걸까? 그렇게 잠이 깨고 나면 그 밤이 내내 서러워 길우가 마지막 날 사용했던 담요에 코를 박고 길우의 안부를 묻는다. 아직 남아 있는 길우 냄새가 나면 육신을 잃은 길우가 내 곁에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나는 인간의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다. 직업과는 상관없지만, 관련 공부를 꽤 오랫동안 열심히 해왔다. 그런데 길우를 보내고 나서야 ‘상실로 인한 고통’이 정신의 영역이 아니라 몸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실은 내 몸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처럼 내 생활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신체 부위가 사라져도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몸이 존재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며 ‘환상통’이라는 것을 만든다. 나의 일상은 지금 환상통을 앓고 있다. 내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아끼고 돌보던 존재를 잃고 그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동원해 잃어버린 내 고양이가 존재한다고 끊임없지 주장하다 좌절하길 반복하고 있다. 이 환상통 같은 시간을 통해 나는 비로소 '상실의 고통'이라는 말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길우야 다음에 꿈에 또 와줘, 그때는 검은 동그라미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네 모습으로 와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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