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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필 Nov 13. 2022

길우 4


길우가 떠나고 두 달이 지났다. 길우가 없는 집은 낯설다. 방마다 온도를 달리할 필요가 없고, 밥 먹으며 고통에 몸부림친 길우의 흔적을 닦아댈 필요도 없다. 냄새를 없애기 위한 환기에 신경을 덜 써도 되고, 2주에 한 번씩 동물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게 허전하고 슬프다.


길우는 부모님보다 먼저 내게 죽음의 무게를 알게 해 준 존재다. 길우가 떠난 후에 나는 이렇게 길우 이야기를 기록하게 되었고, 죽음과 애도를 소재로 한 책과 작가와 철학자들이 생의 마지막에 쓴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상실의 슬픔을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내 무의식의 발버둥이며 절박함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나는 죽음도 상실도 사후도 명확히 설명해낼 수 없다. 다만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생의 유한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 매일 나의 숙면을 방해하는 고양이 또리방과의 시간도 나를 힘들게 했던 누군가와의 시간도 사랑하지만 오래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빠와의 시간도... 모두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그래서 끝은 슬픔이기도 하지만 사랑과 선의와 아름다움을 좀 더 짙어지게 하는 것도 같다.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사랑하는 것들에는 약간의 슬픔이 깃든 것은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길우는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 중간계 어디쯤에서 내게 지금 이생이 가진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왔던 게 아닐까..


사랑해 길우야.

그리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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