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씁쓸한맥주 Aug 07. 2023

3. 3월 1일 임시 도민의 삶 시작

개반 사람반 이것이 진정 펫 프렌들리?

3월 1일 아침은 유난히 스산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추적추적 기분 나쁘게 으슬으슬한 날씨를 만들어내는 날이었다. 나의 운전솜씨가 걱정되셨던 부모님께서 내 차를 운전하여 목포항까지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차를 배에 주셨다. (지금은 제주도를 다녀와서 운전실력이 아주 늘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예약한 배는 진도에서 출발하는 쾌속선(1시간 30분 소요) 이었다. 그런데 탑승하기 이틀 전, 유선상으로 '배에 결함이 발견되어 목포에서 출발하는 퀸메리호로 변경해주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결함이 있는 배를 탑승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퀸메리호는 운항에만 4시간 30분이 걸리는 배였다. 차량을 선적하고 내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얼추 6시간이 소요되는, 비행기로 치면 웬만한 동남아시아 국가를 갈 수 있는 시간이 걸리는 셈이었다.

특히나 배정된 룸이 '펫프렌들리룸'이었는데 말이 프렌들리지 20평 남짓 되는 공간은 난방이 되지 않는 방바닥이 있고, 개가 15마리 사람이 20명 가까이 누워있는 비하하자면 '개판사람판'인 공간이었다.이곳 저곳에 배변패드가 널려있었고, 그 배변패드 바로 아래 사람이 머리를 대고 추운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다. 한 마리가 짖으면 모두가 돌림노래로 짖기 시작하는 곳. 4시간 30분을 견디기에는 춥고 너무 힘들었다.


초반에는 화장실을 오가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방이 광장 바로 앞 쪽에 있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개가 무서워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며 문을 꼭 닫아달라고 직원 분이 와서 당부를 하셨다. 

우리는 탑승한 것인가, 갇힌 것인가. 예전에 배에 옴짝달싹 못하고 실려간 흑인 노예 분들을 떠올리며 이 시간이 어서 흘러가길 눈을 감고 기다렸다.

                                                                            


결국 방을 나와 복도에서 케이지에 아이를 넣고 책을 읽으며 쉬었다. 의자도 불편하고 춥고, 여러모로 불편했다. 무엇보다 그 전혀 '프렌들리'하지 않았던 환경에 붙은 '프렌들리'라는 방이름이 주는 어감이 너무 싫엇다.


드디어 거의 다 도착하여 차를 선적한 사람은 차에 가서 대기해도 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와 차로 내려가서 대기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차 안에서도 차를 가지고 타지 않은 사람들이 하선할 때까지 기다려야했기에 긴긴 기다림은 여기에서도 계속되었고 약 40분 가량을 차에서 보냈다. 


긴 기다림에 지쳐버린 나의 여행 메이트

내 여행 메이트도 배에서의 다른 강아지들과 부대끼는 시간들이 힘들었던지 차에서는 내 무릎위에서 자려고 하고 나중에는 애착백에 들어가서 곤히 잠을 자는 모습에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인데, 아직 우리는 배에서 내리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세자하고 온 것이 무색하리 만큼 차에는 바닷물이 미스트처럼 내려앉아있었다. 시작부터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무거운 마음과 용기를 낸 여행을 안 이모가 나의 여행 첫 5일을 함께 해주기 위해 선착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힘든 여정에 내가 보살펴야하지만 나를 위로해주는 따스한 존재가 있고, 

이 길 끝에 나를 향한 환한 웃음과 사랑을 가득 품은 사람이 서있다는 것 만으로 힘이 났다.



그 두 가지 만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저 바다 위에 50분간 갇혀 둥둥 떠 있어도, 언제 내릴지도 모른 채로 차에 갇혀마냥 기다릴 수 있었다. 드디어 차에 체인이 풀리고 출발하라는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의 자유를 잊지 못한다. 그 시동의 떨림이 주는 설렘과 배를 나올 때의 덜컹거림, 바닷물의 짠기를 씻어주기위한 물 샤워까지.


이제 진짜 제주에 도착했다.

작가의 이전글 2. 댕댕이는 모르는 은밀한 여행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