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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May 08. 2022

갓생은 과연 바람직한 삶인가

치열함을 강요하는 요즘 사회에 대한 작은 불만 

갓생 혹은 댓걸(that girl)


요즘 유튜브를 둘러보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키워드들이다. 


갓생이나 댓걸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는 다음의 특성들을 포함한다.

-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 운동하기 

- 몸에 좋은 음식 챙겨먹고 물 많이 마시기 

- 책 읽기 혹은 공부하기

- 주변을 정돈하기

- 본업 열심히 하기


이러한 트렌드가 처음에는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자기개발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유행이란 게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뭔가가 유행해야 한다면 명품하울 보다는 자기개발이 낫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이 트렌드가 계속될수록 갓생이나 명품하울이나 누군가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생이라는 유행이 생기기 전에 자기개발계의 유행은 미라클모닝이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브이로그가 유튜브를 뒤덮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루틴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남들처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학교에 가는 게 내 아침 루틴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 전혀 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고, 이 고요한 아침 시간을 좋아했다. 


이때는 자기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일어날 수가 없다는 사람들의 댓글이 그저 변명인 줄 알았다. 그냥 조금 일찍 자고 조금 일찍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닌가. 1시간을 일찍 일어나라는 것도 아니고 30분을 일찍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든가. 



근데 그게 그렇게 힘들더라.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는 순간 나의 아침루틴은 산산이 무너졌다. 일단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일찍 자는 게 불가능했다. 아무 짓도 안 하고 바로 퇴근해서 집에 오면 9시였고, 씻고 오면 10시, 일기 쓰고 친구와 하는 영어책 읽기를 하면 11시가 넘었다. 약속이 있거나 운동이라도 하는 날에는 집에 오면 10시가 넘었고, 씻고 오면 뭐 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이 11시가 넘었다. 


즐거운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그저 해야 하는 일만 하다가 하루가 다 지나가 버린 게 너무 억울해서 밤늦게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지나갔고, 지금 자지 않으면 다음날 일어나기가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항상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에 들었다. 


9시까지 학교에 가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하므로 11시에는 잠에 들어야 8시간의 수면 시간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12시가 다 돼서야 잠에 들었고,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7시간보다 수면시간을 줄이면 하루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게 너무 자명했기 때문에 보다 일찍 일어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아침에 하던 루틴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영어 영상을 틀어두고, 학교 가는 길에는 책을 읽거나 영어 오디오북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침루틴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내가 아침 루틴을 좋아했던 건 결국 그때 하는 행위 자체보다는 그 어떤 소음도 방해도 없는 고요한 환경에서 나에게만 집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침에 준비하는 시간을 조금 희생해서 다시 아침루틴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녁에 머리도 다 감고 자고, 화장이나 머리 세팅을 전혀 하지 않는 대학원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생 때처럼 1시간씩 일찍 일어나는 건 불가능했고, 그저 아주 조금 일찍 일어나 최소한의 아침루틴만 이어 나갔다. 


이 아침 루틴이 성공적이었다면 이 글은 쓰이지 않았겠지. 팔팔했던 대학생과 다르게 늙고 병든 대학원생은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최대한 늦장 부릴 수 있을 때까지 늦장을 부리다가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아침을 챙겨 먹고 나갈 때가 가장 많았고, 어떻게 일어나서 스트레칭하는 데까진 성공하더라도 도저히 침대에서 나갈 수가 없어서 도로 드러누워서 유튜브를 보다 나간 적도 많았다. 


그렇게 아침 일기장의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자 나는 어떻게 하면 아침에 잘 일어날 수 있을까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란 단 하나뿐이었다. 


일찍 자는 것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 봐도 나에게 일찍 자는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서 낭비하는 시간이 있어야 그 시간을 아껴서 일찍 자는데, 아무 짓도 안 해도 집에 들어오면 9시인데 뭘 어쩌라는 거지. 교수님이 갑자기 마음을 고쳐 먹어서 6시 퇴근을 시켜 주거나, 학교가 우리 집 앞으로 이사오지 않는 이상은 도저히 시간을 아낄 건덕지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 대학원생이 뭔 자아고 미라클 모닝이냐 그런 건 사람이나 추구하는 거지, 하고 생각을 하는데 그럼 직장인은 이 루틴이 가능한가 하고 또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평범하게 9-6로 일을 하고 출근에 1시간이 걸리는 직장인이라고 가정을 해 보자. 퇴근하고 집에 오면 7시쯤 될 거고, 저녁 먹고 치우면 8시, 씻고 오면 9시. 운동이라도 하고 오면 집 와서 씻으면 10시. 대학원생 때보다 한 시간쯤은 여유가 생기겠네.


나는 길들여진 노예대학원생이라 가끔 6시 퇴근만 해도 시간이 남아도는 것처럼 느껴지긴 한다만, 생각해 보면 직장인도 집에 오면 여유시간은 겨우 2시간 정도 생기는 셈이다. 



그런데 이 쥐꼬리 같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자기개발도 하란다. 



아예 자기개발에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고. 나는 그냥 내 살고 싶은 대로 살련다 하겠는데, 또 자기개발은 좋아하는 사람이라 유튜브는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서 저 사람이 대단한 건지 내가 못난 건지 자괴감만 늘어난다. 


9-6의 근무시간도, 왕복 2시간의 출퇴근 시간도 모두 나의 잘못이 아니건만 이 사회는 내가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을 내 게으름 탓인 마냥 몰아간다. 그래 게으름은 게으름이지. 저기 저 유튜브에서 갓생 사는 사람은 나처럼 집에 오자마자 드러누워서 핸드폰 보는 짓은 안 할 수도 있겠지. 근데 잠깐 누워서 웹소설 한 편 볼 시간도 주지 않는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일까. 


그저 운동하고 책 읽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써야 할까. 


갓생이란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않으면서, 치열하게 살지 않는 건 너의 잘못이라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근무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뭐 갑자기 높은 사람들이 회까닥 돌아서 주 4일제 근무를 시켜줄 것 같지도 않고, 나한테 직장 앞에 집을 구할 수 있는 돈이 떨어질 것 같지도 않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없는 시간을 쪼개는 것뿐이겠지. 


이미 없는 시간을 쪼개는 것에는 환멸이 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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