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 Eunjeong Jul 10. 2024

아빠는 이제 요양원에 산다

폭풍 같은 한 달이었다. 


부모님에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고, 

보조 보행기에 의지해 식탁까지 오던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식탁에 앉지 못했다. 

화장실은 더더욱 갈 수 없었다. 

이제 아빠는 TV앞 침대에서 세 걸음쯤 떨어진 의자까지도 갈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아빠의 의자를 침대 바로 옆에 붙여 놓았다. 

아빠의 세상은 이제 침대와 그 옆의 의자. 

그리고 저 멀리의 TV뿐이다. 


아빠가 쓰러진 지 20년이 되었다. 

그 20년 동안 우리 가족은 너무나 많이 바뀐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싸우고, 울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며 지금까지 가족이었다. 


그 사이 엄마의 입에서 '요양원'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왔지만 

엄마는 매번 아빠를 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딸인 나는... 주간병인이 아닌 나는...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주간병인인 엄마의 딸이기도 한 나는 힘들어하는 엄마를... 

아빠의 간병으로 몸이 상하는 엄마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아빠의 요양원을 알아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학교에 출근하는 날 아침.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울어 부은 눈으로 들어가면 어쩌나,

수업을 하다가 눈물이 나면 어쩌나...


아... 나는 또 결국 내 걱정만 하는구나. 


그렇게 폭풍 같은 한 달이 조금 지나고 

아빠는 이제 요양원에 산다. 


아빠가 가기 며칠 전부터 엄마는 귀도 잘 안 들리는 아빠에게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해 준다.


요양원이 어디에 있고 어떤 곳이고 

우리가 얼마나 자주 아빠를 보러 갈 것인지 

그곳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거라고 

매일매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말한다.

애기같은 아빠가 너무 놀라지 않게 자꾸 알려줘야 한다고


그러면서 아빠가 가는 날 엄마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빠가 떠나는 날 아빠의 그 눈을 평생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하디 강한 엄마에게서 들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가족이었지만 자식인 나는 아빠의 간병에서 늘 제삼자였다. 

요양원에 가기 전 한 달 동안 기저귀를 찼던 아빠와 살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절대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겠지... 


20년 동안 엄마가 힘들어도 묵묵하게 간병을 했던 건 

엄마가 하지 않으면 자식인 내가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

자식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빠를 보내는 마음 역시 나보다는 더 복잡할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아침 일찍 아빠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밥도 챙겨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나갔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아빠를 모시러 왔다. 


휠체어에 탄 채 차에 탄 아빠의 뒷모습에 눈물이 났다. 

'아빠, 빨리 적응하면 빨리 만날 수 있으니까 잘 지내야 돼'

라는 말을 끝까지 다 하지도 못했다. 


담담하게 차에 탄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저녁에 요양원에서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휠체어에 앉아 체조를 열심히 따라 하는 아빠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궁금했다.

아빠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아빠는 우리를 원망하고 있진 않을까...


아빠는 이제 요양원에 산다...

  

작가의 이전글 통번역대학원 박사과정을 나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