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이다. 간밤에 잠을 설쳐 몸이 무겁지만 아내의 칭찬 한 마디가 기분을 끌어올렸다. 신입생 수업 이야기 글을 아내에게 보냈다. 졸필 읽어 내느라 고생할까 봐 망설였지만,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오늘 아침 최고의 글이라 찬사를 받았다. 그 글이 얼마나 빈약하고 부끄러운 수준인지, 나는 안다. 그런데도 칭찬은 나를 요동치게 한다. 격려의 말임을 뻔히 알아도 이 정도인데, 자기가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받는 칭찬은 하늘을 날게 하고 세상의 모든 행복을 거머쥐게 할 것이다. 돈과아부는 로비스트 최고 덕목임이 분명하다. 글을 잘 쓰는 방법 중 하나는 남에게 공개하는 것이라 들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칭찬이 글쓰기 최고의 자양분이다. 아니 글쓰기뿐 아니다. 한 개인의 인생 전체도 작은 칭찬으로 굳세게 선다. 그러나 우리는 칭찬은 고사하고 얼마나 상대를 지적하고 파내며 살아오고 있나? 아이의 좋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고쳐야 할 부분만 보였다. 그래서 재촉하고 압박하고 조아 매 힘들게 했다. 싫은 모습은 어찌 그리 확대되어 커져서 내 눈앞을 가려 버렸었던가? 비난의 소리는 어찌 그리 빠르게 터져 나갔던고? 좋은 것은 보이지 않고 나쁜 것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좋은 것을 깨닫기는커녕 나쁜 것만 깊게 깨달아 가며 살아왔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한다. 오늘 아침, 세상을 날 수 있는 칭찬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터트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눈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이제부터 보는 것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좋은 것 밖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만들어야 한다.
책상에 앉았다. 휴일 오후의 노곤함이 온몸에 스며든다. 책상 옆 보조의자에 발을 올리니 발바닥 속에 머물고 있던 피로가 스물스물 새어 나오고 있다. 안경 너머 눈두덩은 슬며시 내려오는 눈까풀을 받쳐 내느라 팽팽하다. 아침 운동으로 땀을 배출하던 근육들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드느라 수축하면서 피부들을 잡아당기고 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즐거운 일도 많다. 그러나 스스로 움직여 근육을 긴장시키고, 땀과 같이 배출되는 피로의 자극이 주는 쾌감을 맛보는 것은 큰 행복이다. 운동하는 좋은 습관이 내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아내와 스타벅스에 가서 창가에 앉아 버거와 수프로 아침을 즐겼다. 아이들과 카톡으로 연락도 하고 사진도 올렸다. 즐거운 시간이다. 집에 들어와 TV 앞에 앉았다. 온 라인 예배로 은혜받았다. 아내는 배 고프다 하며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진수성찬을 준비했다. 반찬 없이는 밥 먹을 수 없다는 지론을 오늘도 실천했다. 풍성한 갈치찌개다. 잔뜩 넣은 생선을 하나하나 발겨 먹느라 힘들었을 듯도 한데, 대식가답게 우리는 모조리 먹어 치웠다. 먹고 나서 즉시 생선 잔해로 가득한 그릇들을 설거지로 치워 냈다.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여기 책상 앞에 비스듬히 앉아있다. 그리고 쏟아지는 잠을 이기느라 무지 애쓰고 있다. 무언가 쓰고 싶은데 잘 안된다. 머릿속에선 모호하게 덩어리만 비치고 있을 뿐이다.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답답하다. 아니 그렇지도 않다. 원래 이런 것을 즐기는 것도 좋다. 모르고 희미하고 아련하고 그래서 더 신비로운 상태. 그런 것이 훨씬 더 매력 적이다. 알 수 없는 세상을 알려고 애쓰는 것은 바보의 일상이지 않은가? 그냥 이대로 책상에 머물고 싶다. 열어 놓은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온몸을 바람으로 젖게 하고 싶다. 며칠 전 책 문구가 떠오른다. The moon is on him like skin, a sheaf of water. 달이 그의 피부를 덮었다. 샤워할 때 물줄기들이 피부를 적시듯이. 어제 아내와 함께 간 아홉산 벤치에서, 그리고 오늘 책상 앞에서 기분 좋은 바람으로 피부를 자극하면서 즐기고 있다.
오늘 SBS 집사부일체를 봤다. 소설가 김영하가 나왔다소설은 그냥 쓰는 거라 했다. 한 문장 쓰고 거기에 말이 되게 또 한 문장 쓰고 그것이 소설이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냥 써 내려 가야 글은 써진다. 내 모든 오감을 열어놓고 거기에 부딪히는 소리를 집중하며 듣고 느낌과 생각을 거기에 붙이면 된다. 마음을 열어 내는 것, 그것을 해 보고 싶다. 우리가 노력이라고 말하는 그것 아니고, 그냥 열고 즐기고 느끼고 싶다. 공간 지리학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는 건지, 정확한 용어도 아닌 것이 물덩이처럼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 분명 나는 공간에 산다. 그것도 지리학에서 가리키는 곳 만을 지나며 그것에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과 생각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몸은 특정의 위치에 머물고 있지만 나는 다른 곳을 떠 다니며 느끼며 산다. 내가 사는 곳은 내가 머물고 있는 장소가 아니다. 생각이 머무는 곳에 나는 산다. 나는 끝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을 닮았다. 여기를 즐기고 저기를 느끼며 감동을 타고 날아다닌다. 시간 심리학이라는 말도 들었다. 시간도 마음으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다 한다. 망각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과거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를 적응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망각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망각의 도움으로 줄이기도 하고 감동으로 현재를 늘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삶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때로는 풍성하고 깊어서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나는 분명 정해진 길이의 태양년 속에 살지만, 어쩌면 길게 늘일 수 있는 시간과 느낌 속에서 살고 있다. 내 마음이 지배하는 감정년 속에서 산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을 살고 늙고 아프고 죽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머물지 않는 또 다른 시간을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