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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Jun 16. 2022

비 온날 생각

비가 내린다. 가뭄에 목말랐을 땅이 신이 났다. 허기적 버리며 빗물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다. 비는 하늘에서 떨어져 땅을 힘껏 친다. 퍼석퍼석한 공간을 파고들었다. 미처 스며들지 못한 빗물이 물 웅덩이를 만든다. 그리고 중력의 명을 기다린다. 꽃들이 무겁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힘이 없던 줄기가 탱탱해졌다. 키도 커져 버렸다. 지쳤던 엽록소들도 제 세상이다. 녹색 냄새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희 뿌옇게 옅어가던 색깔에 윤기가 흐른다. 연두를 지나 녹색으로 옷 입은 잎사귀 위를 빗물이 흐른다. 맑은 물망울 너머에 신비의 색깔 실루엣을 입었다. 기운 차린 잎 위를 구르고 있다. 장마 사이 어느 때에 큰 빗방울에 굴절된 장미 색깔에 감탄한 적이 있다. 비는 잎사귀 위에 그렇게 흐른다. 색깔을 삼킨다. 꽃들에 생기가 흘렀다. 예쁜 얼굴이 더 밝아졌다. 피부가 너무 좋다. 화장이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색들로 얼굴을 덮었다. 세상은 색깔의 조합이다. 하나도 같은 색이 없다. 비슷하게 보여도 명도와  채도가 다르다.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얼굴도 다르고 마음도 다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하나인 내가 살아가고 있다. 비는 공기를 끌어내린다. 가볍게 올라가던 것들을 차분히 내려 앉힌다. 습기를 담아 무거워져서 바닥에 앉았다. 세상은 잠잠하다. 들썩 거리지 않는다. 마음까지도 내려와  않았다. 타작마당에 날아드는 쭉 쩡이처럼 어지러웠던 생각이, 비가 오니 조용하고 차분하다. 바쁜 일상을 접고 쉬라고, 생각 멈추고 정지하라고 비는 말한다. 안개가 내렸다. 시선이 뿌였다. 산들의 형체마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동양화의 그림으로 뭉실거린다. 잘 보이지 않으니 좋다.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니 좋다. 세상에는 명확한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 마음 까지도 얼마나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나?  분명한 논리를 가르치는 세상 지식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확실하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인생이지 않은가? 지나가는 시간 속에 숨어 있는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 행복 아닌가? 비 내리는 아침.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어제 오후 흔들거렸던 마음도 자리 잡았다. 이유 없이 비틀거리던 기분도 내려앉았다. 빗소리 들으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트레드밀 위를 달렸다. 흐르는 땀방울 훔쳐 내리며 비 오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매일 다른 세상에 사는 것에 감사했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 ♧♧♧ FM 클래식 방송을 들었다. 음악소리가 물소리에 섞여서 소음으로 들린다고 아내는 말하지만, 내게는 아니다. 소리가 정확히 들린다. 물소리에 섞인 좋은 소리를 찾을 낼 수 있다. 야구 좋아하는 아내가 어떤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야구 중계를 명확히 들어내는 것처럼. ♧♧♧에서 제공하는 이 음악은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즈음은 많이 듣지 못한다. 책을 읽을 땐 음악을 틀 수 없다. 아주 작은 가락도 내 귀엔 선명히 들어와 방해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들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즈음은 영어 듣기 공부한다고 더 듣지 못한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할까라고 생각하며 클래식 음악 전도사가 되었던 적도 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 나면 듣으려 애쓴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켠다. 오늘도 물소리에 섞여 나오는 소리에 감동받았다. 아름다운 선율이 몇 음절만 들어와도 내 몸은 반응한다. 나에게 음악은 음표와 소리가 아니다. 멜로디에 숨겨져 있던 감정이 다가온다. 내 마음판은 콩콩이라고 불리는 트램펄린이다. 아주 작은 입자와 소리도 놓치지 않는 네바다 사막의 거대한 음파 집진 장치다. 미세한 소리가 내 마음판을 건드리면, 그것은 증폭되고 커져서 진한 감동으로 나를 건드린다. 오늘 아침 또다시 하나님께 감사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쉽게 감동하는 여린 마음 감사합니다. 딱딱하게 굳지 않아 고맙습니다.



런던 Wigmore 홀에 갔을 때였다. 매서운 추위에 눈물까지 흘리며 거기를 찾아들었다. 실내 온기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음악을 들었다. 난 사실 깜짝 놀랐다. 음악 연주가 최고라는 사실보다 청중에 더 크게 놀랐다. 80에서 90세가 되어 보이는 관객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짙게 안착된 음악 마음이 옆에서 전달되고 있었다. 지긋이 감은 얼굴 너머로 그들이 느끼는 희열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감동이 피부를 비집고 나온 즐거움이 있었다. 최고의 음악과 함께 살면서 시간을 삶으로 영글어낸 열매다. 피부는 찌그러지고 구겨지고 거동도 심하게 불편해 보였지만, 그들 내면은 여전히 젊고 흥분하고 생기 있고 살아 있었다. 육체는 늙어 가지만, 마음은 젊어야 한다. 인간은 소멸 하지만, 그래서 '필멸', 반드시 죽지만, 정신은 죽지 않는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더 깊고 풍성할 수 있다. 이 감정이 정신을 젊게 하고 살린다. 이것을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내 정신이 더 젊어 지길 기도했다. 더 행복하고 편안하고 깊어지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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