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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nui Oct 30. 2023

망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정말… 정말로?

『밀레니얼의 마음』(2022, 강덕구)



망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정말… 정말로?


FBI의 종신 국장 존 에드거 후버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말년의 헤밍웨이는 FBI가 자신을 사찰한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리고 FBI는 실제로 헤밍웨이를 감시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었고 미국과 소련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쿠바와의 인연이 깊은 헤밍웨이는 악명 높은 후버 국장의 의심을 부추겼다. 이제 한번 대답해 보라. 무엇이 망상이고 무엇이 합리적 의심인가? 우리는 지금 음모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망상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또는 망상과 진실의 아리송한 관계에 대하여.


강덕구의 『밀레니얼의 마음』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리고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이 “우리 시대의 불행을 초래한 원인을 탐사”하는 탐사선이 되기를 바라지만 결국엔 캄캄하고 망망한 어둠 속을 표류할 뿐이다. 그가 밀레니얼의 신세를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우주선에 비유하듯이, 이 책은 가로등 꺼진 밤거리를 횡보하는 취객의 걸음걸이 같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집이 아닌 곳으로 모험을 떠나지도 못한다.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그에게는 ‘망상에 관한 망상’만이 주어져 있다. 말하자면 『밀레니얼의 마음』은 메타-망상 에세이다.






밀레니얼세대의 일원으로서 2010년대를 탐구하려 하는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우리가 나고 자라 온 시대의 성격을 규명하는 총론이고, 2부는 이대남과 한국적 남성성을, 3부는 오늘날 한국 정치의 기저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4부는 밀레니얼세대의 정신적 지형에 일어난 혼동을 다룬다. 각 부는 동시대의 어떤 징후를 재구성한 짧은 픽션으로 시작하고, 두세 편의 에세이가 뒤를 잇는다.


흩어져 있는 각각의 글들을 관류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아노미’다. 모든 가치 체계와 판단 기준이 무너졌다. 2010년대를 지나온 우리는 역사의 소실점이 지워진, 원점을 파악할 수 없는 괴상망측한 좌표 위에 내팽개쳐졌다. “출발한 목적도 상실했고, 그렇다고 도착해야 할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마치 ‘서클 적스(circle jerks)’, 그러니까 빙 둘러 서서 각자 자위를 하는 모임과 비슷하다고 강덕구는 말한다.


재미있는 비유지만 새로운 진단은 아니다. 강덕구는 여기서 조금, 정말 조금만 더 나아가고 걸음을 멈춘다. 좌표축의 혼란과 붕괴가 세계 속에서 ‘나’의 위치감각을 망가뜨렸다면, 망가진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강덕구는 시간 및 거리감의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 시대의 ‘망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3부에서는 공포가 혐오를 낳고 음모론이 공포를 떠받치는 ‘망상 공장’으로서의 한국 정치를 치밀하게 묘파하고 있으며, 4부에서는 “현실을 이미지로 산출하는 데서 비롯되는 거리”의 문제를 우리 세대가 어떻게 우회하고 회피하는지 적절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3부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가 “우리는 이념과 생각들이 널브러진 폐허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불안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라고 쓸 때, 그건 시대에 대한 진단일 뿐만 아니라 저자의 어리둥절한 자기고백처럼도 들린다.


『밀레니얼의 마음』이라는 제목답게 이 책에서 강덕구는 우리 세대의 심상 지도를 또렷이 그려낸다. 우리가 함께, 그리고 따로 겪어온 일들, 2010년대의 타임라인과 사건들에 대한 우리들의 휘몰아쳤던 마음속 반응을 강덕구는 탁월하게 받아적고 있다. 그는 훌륭한 필경사다. 순식간에 지나쳐온 동시대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할 줄 안다. 본인의 개인적 경험이 시대와 맞물렸던 순간들을 술회하는 서문은 특히 훌륭하다. 그와 비슷한 소음 속을 부지불식간에 통과하고 만 또래라면 서문을 읽는 내내 이마를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 기술의 영역을 벗어나 사변적 분석을 주절거릴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현기증의 원인이 새로운 관점을 마주치는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충격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못마땅한 점은 그가 제시하는 분석이 그다지 참신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86세대의 현실 인식은 망상에 기초하며, 우리들, 밀레니얼과 Z세대는 그들과 또 다른 종류의 섬망증을 앓고 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에서 그가 하려는 얘기는 이게 다다. 그냥 이걸 길고 현학적으로 풀어쓴 것이다. 주제의 근원을 구체적으로 파고든다기보다 잉여를 불필요하게 덧칠하기만 한다.


『밀레니얼의 마음』은 마치 이미 마크 피셔가 지적하고 스스로 앓다 못해 자기 목을 매달아야 했던 ‘반성적 무기력’을 재현하는 것만 같다. 아무래도 앞 문단의 첫 문장은 다시 써야겠다. 이 책에서 단순 기술과 사변은 분리되지 않는다. 사변적이고 장황한 글의 형식과 배치마저도 우리 시대를 기술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닌가?






그나마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지는 대목이라면 '이대남'을 다루는 2부뿐이다. 강덕구는 전인권의 한국적 남성성 분석과 허문영의 한국영화에서의 소년성 분석을 접합하고, 그들의 문제 의식을 이어 이대남에 적용하려 한다. 그에 따르면 이대남은 갑자기 튀어나온 별종이 아니라 해묵은 한국적 남성성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 힙합의 역사와 뿌리, 콤플렉스에 관한 2부의 흥미로운 에세이에서 강덕구는 "2010년대를 통과하는 남성성이란 여리디 여린 소년성에서 패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자기혐오로 가닿는 여정"이라고 결론짓는다.


결론 자체는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그가 아닌 누구라도 내릴 수 있는 단순한 진단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론에까지 이르는 경로를 점검해야 한다. 강덕구는 한국적 남성성의 역사를 “아버지를 부정하는, 또 다른 아버지들을 찾는 자식들의 역사”로 규정한다. 그리고 86세대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는 ‘소년성’의 실체를 폭로한다. 한국의 남성들은 ‘진정성’을 추종하며, 그들을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아웃사이더로 상상하고, 그들이 순수를 간직하고 있다고, 그게 그들에게 윤리적∙정치적 판단에서의 특권을 보장한다고 망상한다. 87년 체제는 그들의 이상과 현실이 합치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87년 이후는? 그때의 소년은 변절하고서도 자기가 변절한 줄 모른다. 지금의 소년은? 좌절하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소년은 현실에서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기보다는, 현실에서 달아나 버리며 자아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이대남 담론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으로서는 만족하기 어렵다. 강덕구가 ‘이대남’을 “남성성에 내재된 위기에서 비롯된 담론적 구성물이라고 단언”할 때, 나는 이것이 실재를 사변으로 갈음하는 망상 공장의 또 다른 전형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강덕구는 이대남을 호명하면서 이대녀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86세대와의 가족 로맨스만큼이나 같은 또래 이성들과의 관계가 MZ의 세대 인식을 정초하는 핵심적인 쟁점이라는 걸 강덕구는 애써 외면한다(문화적 자유주의의 함정과 여성의 섹스에 대한 남성들의 이중적 의식을 다루긴 하지만 피상적이다). 이대남의 문제는 섹스도 사랑도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대녀의 문제는 섹스는 쉬운데 사랑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망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망상을 품고 사는지, 그게 어디서 왔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어디로 갈 것인지 하는 망상의 문제는 전장을 제대로 지목한 뒤라야 접근할 수 있다.


1980년생부터 2010년생까지를 억지로 포괄하는 MZ세대를 잇고, 그들을 86세대에 맞세우는 가장 끈끈한 연대의 고리는 어쩌면 젠더의식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들이 겪었던 젠더경험이 많이 다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작금의 젠더전쟁의 깊숙한 이면엔 분명히 실재적인 메커니즘이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무관한 바보 같은 이유로 울고 웃었는지도 모른다.” 그간의 진단도 처방도 모두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건 86세대가 MZ세대를 성토할 때 자주 쓰는 레토릭과도 무관하지 않다. ‘MZ세대에겐 역사의식이 없다.’ (물론 이는 86세대의 역사의식이란 것도 21세기엔 전혀 들어맞지 않는 구닥다리 망상이란 점을 알지 못하는 주제넘은 비난이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망상을 고발하고 폐기할 게 아니라 사실에 부합하는 망상을 추려내는 일이다. 아마 필자의 오해일 테지만, 이 책은 사변적인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나가면서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는 사회의 동역학을 해명하는 데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대체로’ 의미 없는 망상이다(때때로 읽어봄 직한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증언의 진실성을 운운하며 “다소간 도덕주의적인 태도를 지양”하겠다던 책 서두의 선언은 서술의 지리멸렬함에 대한 지적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처럼 들린다.


그렇더라도, 그가 겪고 본 동시대의 풍경에 대한 증언은, 정말 실감나긴 한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뿐이다. MZ세대에 관한 MZ세대의 글을 읽으려거든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 쪽이 더 명료하지 않나 싶다. 그때 그 시절을 되짚어 보고 싶은 이라면 『밀레니얼의 마음』의 서문을 일단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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